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Jul 19. 2021

가출이라고 해야 하나, 독립이라고 해야 하나

나만의 공간으로 도망치다.

퇴근 후 차의 방향은,

집이 있는 고양시로 운전대를 돌리지 않고

사무실 바로 옆에 얻은 나만의 '원룸'으로 향했다.


집에 일찍 가서 아이들에게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올까.. 잠시 갈등했지만 곧바로 원룸으로 향했다.


텅 빈 냉장고에 맥주부터 채워 넣었다.

가출 기념으로

<나 혼다 산다>에 나올 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어찌나 신나던지.


그다음 잠자리 세팅.

캠핑용 자충 매트와 침낭을 꺼내놓고선 잠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 잠깐의 시간은, 평균 지점까지 내 마음을 데려다주지 않았고, 중간선을 넘어 밑바닥으로 갑자기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왜 이러지? 난 분명 엄청 신나 있었는데...'


결국 난 잠자리 세팅은 하지 못한 채 벽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다.  난 지금 왜  여기에 홀로 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분명 어젯밤. 나는 가출을 통보했었고, 우리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도 허락도 받았다.

남편이 한 달 동안 아이들을 보며 집을 지키기로 했고

한 달 뒤에는 내가 집에 들어가고, 남편이 원룸으로 나가 6개월간 나 홀로 아이들을 보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내년 2월 전셋집 만기가  끝나 어차피 이사를 해야 하니까

그 시기까지 서로 떨어져서 우리 인생을 정비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럴 바엔 그냥 이혼하자 할 줄 알았는데.

남편이 이혼하기 좋을 조건으로 재산분할도, 양육권도, 양육비 문제도 제안했는데.


그렇게 얻은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인데.



6인 가족이 살 던 정신없는 우리 집과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원룸


앞으로 내가 견뎌내 야 할 시간이기도 하고

감당하고 받아들여할 공간이기도 하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게  이혼이라면...


그렇게 발악하며 덤비며 얻은 전유물 안에서

나는 왜 이런 다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아직도 미련이 남았을까?

아님 내 가정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여전히 있는 걸까.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는 혼잣말을 한다.

'오늘은 고작 월요일. 에어컨 냉매가스를 넣는 날은 목요일. 아.. 덥다. 더우니 일단 집으로 가자. 집에 가서 일단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다시 오자.'


34도가 넘는 찜통더위에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선풍기도 없는 통유리 남서향 원룸이니까 라는 말은 핑계일까 아닐까.

아이들의 숙제는 핑계일까 아닐까.


셋째 넷째에게는 엄마가 잠시 어딜 가 있을 거라고 전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핑계일까 아닐까.


도통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부여잡고

원룸을 나선다.

인천에서 고양시로...


(집에 가고 싶은데, 집에 가기 싫다. 아 어쩌란 말이냐

갈피를 못잡는 내 마음이 너무 싫다. 밉.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화주의자와 회피형 성격장애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