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장 더이상 젊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연습

by 정선후 린스아저씨

목표가 생기자 달리는 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새벽에 한 번.

가끔은 하루를 마치기 전 한 번 더.

겨울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간절하게 달렸다.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묘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기록이 오르자 스스로가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더 가도 되겠다.’

그 문장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달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삶에 다시 리듬이 생겼다.

일도, 관계도, 생각도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몸보다 마음이 더 빨라졌다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종아리 안쪽이 묘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뻐근함.

그 정도였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쉬지 않았다.

훈련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다.

이 페이스를 놓치면 다시는 못 잡을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자 통증은 분명해졌다.

뛰는 중에는 참을 만했지만 멈춰 서 있을 때 더 아팠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신호가 왔다.

신스프린트.

“아프다”보다 “설마”가 먼저 떠올랐다.

이렇게 쉽게?

이 정도 훈련에?


그때 처음 알았다.

몸은 더 이상 예전처럼 묵묵히 따라와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래도 서울동아마라톤 출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신청했고, 이미 준비했고, 이미 말해두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이 정도쯤은 이겨낼 수 있다고.


출발선에 섰을 때 몸은 조용했다.

아프지도, 괜찮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


10km까지는 괜찮았다.

15km에서 다리가 묵직해졌다.

통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힘이 빠졌다.

평소 훈련에서 느끼던 탄성이 없었다.

지면을 밀어내는 감각이 사라졌다.


20km 지점.

머릿속 계산이 시작됐다.

이대로 가면 완주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달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였다.

나는 멈췄다.

누가 멈추게 한 게 아니라 내가 멈췄다.

코스 가장자리로 비켜섰을 때 숨이 차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먹먹했다.

주자들은 계속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뒤에 남았다.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레이스에서 이탈한 사람.

스스로 멈춘 사람.


조금 부끄러웠다.

그리고 조금 안쓰러웠다.


가족이 포기한 나를 태우러 왔다.

차 문을 열고 앉는 순간 애써 웃어보였지만

가슴 안쪽이 뜨겁게 저려왔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날 처음 인정했다.

이제는 무작정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걸.


부상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신경 쓰이게 했다.

몸이 조용히 기준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속도를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르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느냐를 생각했다.

쉬는 날을 일정에 넣었고 회복을 훈련으로 받아들였다.


‘할 수 있음’과

‘해야 함’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연습은

그날 20km에서 시작됐다.


욕심을 줄이는 일이 아니었다.

도전을 오래 하기 위한 전략을 다시 짜는 일이었다.


서울동아 20km에서 멈춘 나는 패배자가 아니었다.


그날 나는 젊음 대신 지속을 선택했다.


"젊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월, 목 연재
이전 05화1부 4장 목표가 생기자, 삶이 다시 앞으로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