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실력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전과는 달랐다.
숨이 덜 찼고, 같은 거리를 달려도 다음 날의 피로가 달랐다.
예전에는 버티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조금은 조절할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오늘도 해냈다’는 감각이 하루에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버티기 위한 달리기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몸을 붙잡는 행위에 가까웠다.
땀을 흘리면 잠시 생각이 멈췄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을 재기 시작했고, 페이스를 의식하게 됐다.
이전에는 남의 일 같던 숫자들이 조금씩 내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다.
특별한 날은 없었다.
대단한 대회도 아니었고, 누가 알아주는 기록도 아니었다.
다만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예전에는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던 페이스를
조금 더 유지하게 됐다.
항상 무너지던 구간을 이번에는 넘겼고,
매번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지점을
조금은 덜 힘들게 통과했다.
어느 날 훈련 기록을 정리하다가 문득 숫자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이전보다 조금 빨라져 있었고, 회복도 조금 더 빨라져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누가 박수를 쳐주지 않아도 내 몸은 분명히 변하고 있었다.
훈련 중에 나의 작은 개인 기록들이
조용히 갱신되고 있었다.
그 순간, 목표가 생겼다.
거창한 꿈이 아니라 그저 이 상승 곡선을 끊지 않는 것.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상태를 계속 이어가는 것.
중년의 좀비 아빠에게 목표는
꿈이라기보다 방향에 가까웠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도만 알면
오늘을 버티는 방식이 달라졌다.
목표가 생기자 하루가 달라졌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달라졌고,
먹는 게 달라졌으며,
술자리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됐다.
신기하게도 이 변화는 달리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목표를 향해 훈련하는 감각이
삶의 다른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일에서도 조급해지지 않게 됐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지금 당장 이길 필요가 없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도전은 중년에게 사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한 장치였다.
아무 목표 없이 버티기만 하는 삶은
조금씩 사람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도달 가능한 목표 하나만 있어도
몸과 마음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고 있기 때문에 달리는 사람이 됐다.
여전히 지치고,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가야 할 길도 많고, 넘어야 할 벽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생겼다.
"목표가 생기자, 삶이 다시 앞으로 기울었다.
목표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