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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ug 10. 2023

수린이가 수영을 해볼라고

생존만 해보겠어요

모두 다 자연인인 샤워실에서 쭈뼛쭈뼛 씻고 양치하고, 멋이라곤 1도 없는 3부 원피스 수영복이 왜 이렇게 안 들어가나(비누칠을 해야 한다면서요?) 구시렁거리며 입고 수영모를 쓰고 수경을 얹은 뒤 수영장으로 나갔다. 어색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수영선배님들이 자꾸 말을 건다. 초보냐 일루 들어와라(저는 물 무서워요) 초보 레인은 저기다, 초보 강사는 여자 선생님이다, 수영모는 실리콘이 좋다 등등. 내 몸의 단점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옷을 입은 내향인은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하다 선생님을 찾으러 갔다. 


이 시간엔 어린이 생존수영 있어서 유아풀을 사용할 수 없거든요


수영 선생님이 수영 좀 해보셨냐 묻길래 처음인데 물을 무서워한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이 시간엔 일반 레인에서 연습해야 한다며 상당히 곤란해하셨다. 그랬다. 많은 검색을 통해 왕초보는 유아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고 조금은 무서움을 덜어내며 수영 강습을 끊었는데 안된단다. 등록할 때 왕초보라고 말했고 10시 레슨 가능하다고 해서 간 건데 1.4m 수심의 일반레인에서 시작하라니요. 일단 걸어서 레인을 왕복해 보라고 해서 떨면서 다녀왔더니 여기서 레슨 받아도 되겠다고 하셨다. 네? 어딜 봐서요? 진짜 무서워하는 사람은 이 수심에서 걷지도 못한다면서 말이다.


수업은 한 가지 배우고 반복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걷기를 계속하고, 호흡법을 배운 뒤 제자리에서 계속하고, 발차기를 배운 뒤 벽 잡고 계속 발차기를 하다가 첫날이 지났다. 둘째 날엔 발차기를 하며 레인을 계속 왕복하고 그 상태로 물속에 얼굴을 넣었다 빼며 호흡법을 연습했다. 얼굴을 물에 넣으니 발차기가 멈추고, 발차기가 멈추니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나 허우적대다 물을 좀 먹었다. 실제로는 등패드와 킥판이 있어서 가라앉지 않는데 무서워하는 내 마음이 가련한 몸뚱이를 끌고 다녔다. 셋째 날엔 호흡하며 발차기로 계속 왕복했다. 머리를 물속에 완전히 넣어도 귀에 물이 안 들어간다는 것과, 내가 생각보다 발차기가 빠르다는 걸 알게 됐다. 네 번째 수업엔 드디어 팔 돌리기를 배웠다. 벽 잡고 팔 돌리기 연습을 하다가 발차기+팔 돌리기+호흡을 같이 하며 레인을 왕복하려고 했더니 뭔가 박자가 안 맞아 몇 번 물을 먹었다. 팔을 돌리는데 왜 발차기가 멈추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물을 먹을 땐 귀에도 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섯 번째 수업엔 물을 먹지 않고 팔 돌리며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됐다. 


선생님 안 돼요! 팔 돌리며 얼굴을 넣으면 계속 코와 입에 물이 들어옵니다!


여섯째 날엔 한 팔로 킥판을 잡고 옆으로 누워서 가보라고 했다. 난 분명 발차기를 하고 있는데 출발할 때 본 기둥이 움직이지 않고 계속 거기에 있다. 뭐지 하고 멈춰 서서 보니 그 자리다. 다시 누워 혼신의 발차기를 하며 어찌어찌 앞으로 가고 있는데 옆 레인에서 파워 물줄기가 넘어와 내 눈과 입으로 들어왔다. 너무 안 움직여서 멈추고 컥컥거려 멈추니 레인 한 번 왕복하기가 힘들었다. 칠일째엔 수업 종료 십 분 전에 옆으로 가면서 팔 돌리기를 배웠다. 십 분 동안 먹은 물이 그동안 먹은 물보다 많았다. 팔일 차에도 마지막 십분 동안 같은 연습을 했는데 놀랍게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자유형 연습인 것 같은데 그동안 한 팔 돌리고 호흡하다가 두 번째 팔을 돌리는 도중에 호흡을 하라고 하니 자꾸 꼬였다. 물을 안 먹으려고 호흡을 신경 쓰면 발이 멈추고, 팔 돌리기에 신경 쓰면 물을 먹고. 나랑 사십 년 넘게 살았건만 나와 뜻이 맞지 않는 몸뚱이라니. 마지막 수업엔 이십 분 정도 자유형 연습을 했는데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팔과 머리를 잡고 돌리고 눌러주시는 데도 물을 먹고 허우적거렸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총 아홉 번의 레슨을 받고 어쨌든 얼굴을 물속에 넣고 팔다리를 휘저을 순 있게 됐다. 마지막까지 등패드와 킥판을 떼지 못했으므로 물에 들어갈 땐 구명조끼나 암링을 꼭 껴야 하지만 말이다. 워터파크 유수풀에서 노는 재미는 알게 됐으나 파도풀은 아직 내 깜냥으론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호텔 수영장은 늘 부녀만 들어갔는데 이젠 나도 같이 가서 물안경 쓰고 아이와 누가 빨리 가나 대결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면 됐다. 뿌듯한 도전이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표지 사진 : 사진: UnsplashEfe Kurnaz 




요즘 한국에선 초등학생 대상으로 인근 수영장과 연계하여 생존수영수업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친구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3학년 때 20회, 4학년 때 10회를 진행한다고 하니 충분히 배울 것 같습니다. 수영장에서 비싼 레슨 받지 않아도 공교육에서 어느 정도 배울 기회를 제공해 주는 건 너무 좋은 제도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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