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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Jan 13. 2024

썰매 타고 집에 간다

시골에선 일상이쥬

만약에 눈이 오면 절대로 차 타고 오면 안 돼!


근래 이 년 동안 크리스마스 즈음에 눈이 참 많이 왔다. 한 해는 하와이에 갔다가 시애틀에 폭설이 와서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하와이에서 하루 더 놀았고, 작년엔 폭설 덕분에 며칠 고립되어 매일 삽질하며 지냈다. 올 겨울은 어쩐이 눈이 박해서 통 소식이 없더니 이번주 후반부터 눈이 온다는 예보가 떴다. 아이는 아침마다 밥을 먹으며 당부를 했다. 눈이 오면 꼭 걸어서 데리러 오라고. 같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싶다고.


목요일에 눈이 온댔다가 금요일로 바뀌더니 아예 비로 바뀌길래 이번에도 안 오나 싶었는데 목요일 오후 두 시쯤부터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산동네는 워낙 날씨변화가 요란하고 우박도 자주 내리는 곳이라 또 시작이구나 했는데 지붕을 후려치던 우박 소리가 잦아들더니 눈 같은 우박들 위로 진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자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1층으로 내려왔다. 왜 이러나 이 아저씨. 갑자기 스키복과 장갑을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이시더니 눈썰매도 꺼낸다. 대단한 아부지 여기 계신다. 아이 스키바지와 부츠를 같이 챙겨 들고 걸어가는데 어쩐지 약간 떨어져서 걷고 싶다. 눈이 내리다 말아서 아직 썰매를 탈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눈썰매를 들고 나타나자 아이반 학부모들이 too early! not snowing! wait until tomorrow! 하며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했다. 여러분 이 대단한 아빠가 내 남편이에요.

대단한 아부지...


어쨌든 아이는 우릴 보고 신 나서 달려왔고, 부츠를 갈아 신긴 후 산책로부터 썰매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때맞춰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제법 기분도 났다. 중간엔 아이 친구도 합류하여 환호는 두 배가 됐다. 아이들 웃음에 고조된 아버님은 평지에서 두 아이를 태우고 눈썰매를 한참 끄신 뒤 집에 와서 벽난로 붙박이가 되셨다. 미술학원도 늦게 보내며 썰매 태우다 몸살 나는 이렇게 좋은 아빠, 보셨을까요?


눈 여파로 두 시간 늦게 등교 - 등굣길엔 눈싸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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