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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May 21. 2021

치과는 미국도 무서워

첫 신경치료를 하필 미국에서 받을 줄이야

첫 신경치료를 왜 하필 미국에서

치과보험회사에서 EOB(Explanation of Benefits)가 날아왔다. 미국 치과 비싸서 비행기 타고 한국 가서 치료받고 오는 게 더 싸다는 무용담(?)을 왕왕 듣던 터라 약간 떨면서 열어보았다. 휴, 이 하나만 치료해서 그런가 그 정도는 아니네. 가..감당할 수는 있겠어. 내 치과보험이 좋은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나이트 가드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530를 모두 내야 하고, 신경치료 및 크라운 비용은 보험 적용해서 $480.55(보험 없으면 $2,670)를 내라고 나왔다.

내 치료에 대한 예상 비용


작년 3월 코로나 봉쇄로 집에 갇혀있던 시절, 어금니 하나가 시리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 때운 부분이 깨진 듯해서 다니던 병원에 전화했더니, 진료는 하루만 하고 있는데 아주 급한 환자만 보고 있으니 나중에 오라고 했다. 반대쪽 치아만 사용하고, 찬물만 머금지 않으면 괜찮아서 일단 그냥 지냈다.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다간 치료를 못 받을 것 같아서 봉쇄가 해제된 뒤 7월에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더니 필링만 깨졌으니 교체하자 하여 치료를 받고 왔다. 이제 다 괜찮겠지 하고 실온의 물을 마셨는데 이가 너무 시렸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시렸다. 신경이 쓰여 만져보니 원래 치아와 필링한 부분의 경계가 확연히 만져지고, 옆 치아와 경계면이 붙어서 치실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 시국에 또 치과를 가는 게 너무 꺼려졌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갔다. 불편한 부분을 말했는데 치료는 잘 됐다며 치아를 사용하지 말고 지내보다가 따뜻한 물에도 시리면 신경치료를 하러 오라고 했다. 아마도 기존 필링을 제거할 때 신경이 노출된 거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너무 방어적인 태도시라 계속 치료받고 싶지가 않았다. 일단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것 같아서 조심하며 지냈다.


11월에 한국에 가려고 칩거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에 통증이 있더니 진통제도 잘 안 듣고 턱이 붓기 시작했다. 출국이 화요일인데 토요일부터 붓기 시작한 턱은 일요일엔 거의 작은 혹처럼 부었고 이도 흔들렸다. 큰일이다 싶어 지인을 통해 한국어 가능한 치과의사 선생님 전화번호를 받아 월요일 아침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바로 진료(미국에선 아주 드문 일)를 받아주셨다. 추측했던 대로 염증이 생겨서 부은 거고, 항생제로 가라앉힌 뒤 신경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자가격리하면서 염증이 재발할 경우 사용하라고 두 가지 항생제를 처방해주셔서 그걸 들고 비행기를 탔다.


항생제의 위력은 대단해서 이삼일 정도 지나니 멀쩡해졌다. 시린 증상마저도 없어져서 치료가 필요하겠나 싶을 정도였다. 미국에 돌아와 남편이 새로 옮긴 회사에서 의료보험 신청을 마친 뒤 치과에 정기검진(일 년에 2회 스케일링 무료)을 잡았다. 지난번엔 급해서 아픈 치아만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이번엔 전체 다 찍고, 역시나 문제가 있던 치아는 신경치료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일정을 잡았다.


어금니가 온통 금밭인데 신경치료는 의외로 처음이라서 좀 걱정이 됐다. 어떻게 치료하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들어서 조금은 마음을 놓고 치료에 들어갔는데, 한국에서도 신경치료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 넓은 고무밴드에 구멍을 뚫어서 치아에 끼우고 치료를 하고, 그 상태로 엑스레이 찍어서 치료가 잘 되었나 몇 번 확인하고, 모든 게 끝난 뒤(장장 두 시간)에야 입을 다물 수 있었다.


한 달 뒤 크라운을 씌우러 갔는데 간호사가 오늘 치료는 2시간 반이 걸릴 거라고 했다. 본만 뜨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크라운도 오늘 씌운다는 거다. 어떻게?? 의사 선생님에게 물으니 본인이 크라운 디자인을 수정하면 기계에서 깎아서 나오고, 그걸 치아에 대보고 수정한 다음 오븐에 구워서 붙이면 끝이라고 답해주셨다. 와 이 신기술 뭐지? 한국도 요즘 이렇게 하나? 경험해 보니 구강스캐너로 해당 치아에 씌울 크라운의 대략적인 모형을 잡고, 일부 수정한 뒤 3D 프린터로 크라운을 찍어내는 것 같았다. 이 과정이 4-50분 걸리고, 오븐에 굽는 게 2-30분 걸리고, 치아에 맞게 수정하고 붙이는 시간이 또 걸려서 2시간 반이 걸리는 거였다. 크라운을 잘 씌우고 나이트 가드 제작을 위한 본을 뜨고 치과를 나왔다. 나이트 가드는 3D 프린터로 찍어낼 수는 없는가 보다. 내심 기대했는데 :)


나의 소중한 치아 친구들

치과에서 진짜 청구서가 오길 기다리며 체크를 꺼내 놓는다. 아직도 이런 결제방식이 낯설다. 치료받고 나오면서 카드로 결제하고 끝나면 좋은데. 혹시나 하고 치과 갔을 때 직원에게 물으니 역시나 집으로 청구서를 보내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치과 갈 생각하면 긴장되는데 어쩌다 미국에서 첫 신경치료를 하게 됐다.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나의 오래된 치아 보철물들이 여기 사는 동안은 잘 붙어있기를. 제발.






참고로 남편의 치아 1개(전체 아님!) 미백 비용은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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