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캐릭터 IP 마케팅
귀여움을 느끼는 감정은 중독적이다. 귀여운 동물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몸에 비해 큰 머리, 짧고 통통한 팔다리, 큰 눈과 잔뜩 부푼 볼을 한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장면을 보면 절로 미소가 우러난다. 오늘날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도 바로 ‘귀여움’이다. 위협적이지 않은 귀여움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캐릭터 IP 산업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본다.
이론적으로 증명된 귀여움의 요소
아름다움은 주관적이지만 귀여움을 느끼는 감정에는 인종과 세대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 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1943년, 아기의 전형적인 신체적 특징이 귀여운 감정과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리켜 ‘베이비 스키마’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사랑받는 캐릭터의 비밀도 바로 그 귀여움에 있다. 1928년 탄생한 디즈니 미키마우스는 세월이 흐르면서 동안으로 거듭났다. 미국의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에 따르면, 미키마우스의 현재 모습은 과거에 비해 이마는 둥글게 솟아오르고 눈이 더 커졌으며 코가 짧아졌다고 한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외모에 맞게 미키마우스도 나이를 거꾸로 먹은 셈이다.
지난 4월 중국으로 돌아간 푸바오도 귀여움을 앞세운 슈퍼스타다. 코로나19로 방문객 수가 뚝 떨어졌던 2020년, 용인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푸바오의 존재는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글동글한 체형을 가진 초식 동물 판다의 무해한 귀여움은 수많은 랜선 이모와 삼촌을 양산했다. 덩달아 자체 기획한 푸바오 굿즈와 협업 상품이 완판 행진을 거듭하며 좋은 반응을 얻자, 삼성물산은 지난해 9월 ‘바오패밀리’ 상표를 출원했다. 푸바오 가족을 콘텐츠로 활용해 본격적으로 IP(지식재산권) 마케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2021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출시한 푸바오 관련 굿즈는 무려 400여 종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2주간 열린 더현대서울 팝업 스토어에서는 무려 10억 원의 매출 이익이 발생하며 화제가 됐다.
푸바오 굿즈를 소비하는 연령층의 대부분은 20~30대 성인이 차지한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 상품이 더 이상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캐릭터 카드 상품 출시에 공을 들이는 신용카드 업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12월 KB국민카드가 출시한 ‘KB국민 에버랜드 판다카드 푸바오 에디션’은 3일만에 1,000매가 완판되었고 추가 발급분 4,000매도 동이 난 상태다. 사실 캐릭터 카드 열풍의 시초는 2017년 카카오뱅크에서 출시한 프렌즈 체크카드였다. 카카오프렌즈의 대표 캐릭터 ‘라이언’ ‘무지’ ‘콘’ ‘어피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한 이 상품은 출시 일주일 만에 100만 건 발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체크카드가 카카오프렌즈 팬들의 굿즈로 소비되면서 소셜 미디어에 프렌즈 카드 발급 인증샷을 올리는것이 일종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후 미니언즈, 펭수, 잔망루피, 짱구, 핑크퐁과 아기상어 등이 카드 플레이트에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다. 캐릭터 카드 마케팅은 실물 카드를 가지고 다니기 보다 스마트폰 간편 결제와 앱 카드에 익숙해진 젊은 층을 잡기위한 일종의 전략이 된 셈이다. 여러 후기를 살펴보면 카드사 혜택은 관심 밖이고 단순히 귀여워서, 또는 해당 캐릭터의 팬이라서 카드를 만들었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카드 업계는 ‘록인(lock-in)’ 효과를 기대하며 높은 캐릭터 라이선스 비용을 감수한다. 마케팅 용어인 록인 효과란 소비자를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묶어 두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물쇠 효과’ ‘고착화 효과’라고도 불린다. 쉽게 말해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안드로 이드폰 대신 아이폰을 사용하고, 네이버 지도를 사용하는 사람이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이메일도 네이버 계정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플랫폼의 서비스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며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평소 같으면 각종 혜택과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자들도 자신이 선호하는 귀여운 캐릭터 앞에서는 무장 해제된다. 귀여움으로 유인하는 캐릭터 IP 산업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무한히 확장하는 슈퍼IP
지난 9월 푸바오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영화 <안녕, 할부지>가 개봉할 정도로 푸바오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이는 판다 특유의 귀여운 외모와 행동거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예정된 이별을 앞두고 사육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는 푸바오의 성장 서사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푸바오의 스토리가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최근 시즌 4까지 방영된 유아용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은 제2의 뽀로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기 급상승 중이다. 지난 8월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사랑의 하츄핑>이 개봉해 역대 국산 애니메이션 중 3번째로 관람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티니핑 시리즈 제작사인 SAMG는 캐릭터 IP 다각화에 몰두하는 중으로 지난해부터 ‘이모션 캐슬’이라는 종합 브랜드를 론칭하고 테마파크부터 패션, 식음료, 교육, 공연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SAMG는 앞으로 기존 타깃 4~7세 영유아에서 나아가 10대 이상 연령층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통업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캐릭터 IP와 협업해 상품을 출시하는 경우,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걸림돌이 있다. 또 해당 캐릭터가 브랜드의 정체성에 부합하는지도 중요하게 따져 봐야 할 문제다. 이에 푸바오나 티니핑처럼 자체 캐릭터를 활용해 IP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캐릭터 시장의 규모가 2005년 2조700억 원대에 불과했으나 2020년부터 연평균 4.4%씩 증가해 2025년에는 16조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이트진로는 두꺼비,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오뚜기는 ‘옐로우즈’를 개발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중이고, 현대백화점의 강아지 캐릭터 ‘흰디’, 롯데백화점의 ‘벨리곰’도 각자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귀여운 캐릭터에 열광하는 MZ세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비용 투자를 통해 개발한 캐릭터도 탄탄한 서사와 콘텐츠 지속성이 없다면 대중들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져 버린다. 귀여운 캐릭터를 개발해 굿즈로 판매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뽀로로처럼 오리지널 콘텐츠가 팬덤을 형성하면서 오랜 시간 꾸준히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콘텐츠를 ‘슈퍼IP’라고 부른다. 성남문화재단도 글로벌 슈퍼IP를 활용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오는 10월, 양정웅 감독과 함께 슈퍼IP 캐릭터와 콘텐츠를 차용한 체험존과 몰입형 아트존, 미디어아트, 설치물 등을 연출할 예정이라니 기대해 봐도 좋겠다.
*본 글은 성남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아트뷰>에 실렸습니다.
https://www.artview.or.kr/post/october-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