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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ka 도깽이 엄마 Aug 13. 2021

징징거릴 전문가

육아 부적응자에게 필요한 사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육아라는 것에 적응을 할 줄 알았다. 처음 50일은 새벽마다 빽빽 울어 대는 아들 때문에 잠이 부족해서 힘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100일의 기적이 지나면 “이 또 한 지나가리라”라는 심정으로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현실에 수긍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 300일이 코앞인 데도 나는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다. 


주어진 루틴에는 적응을 했다.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오전 낮잠을 자고 또 몇 시에 이유식을 먹으며 하루에 몇 번 먹고 볼일은 몇 번을 보고 등등의 일과들… 이건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 이 타임에 울면 이게 배가 고픈 건지 아님 잠투정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적응을 못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저 습관적인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 내고 있다 느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오늘 하루 참 잘 살았다! 수고했어 오늘도!” 같은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오늘 하루 참 어찌어찌 지나갔네! 내일도 똑같은 일과가 주어질 테니 또 파이팅하고 버텨보자!”라는 느낌이 든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현실에 수긍하려 해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힘들게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마저도 내가 컨디션이 특별히 좋거나 아님 엄마 코스프레가 재미있는 날에만 가능하다. 


아들이 5개월 조금 넘어서 부터인가 아들과 같은 띠에 태어난 아가들로 만들어진 “쥐띠 맘”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고 둘째인 맘들도 있고 같은 구 안에서도 사는 동네가 아래, 위, 옆, 뒤, 앞 이렇게 다양하지만 주기적으로 만나서 문센 (문화센터) 수업도 같이 듣고 또 수업 후 커피라도 한잔씩 마시면 잠시나마 나의 현실을 도피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를 동반하여 그 커피 타임도 짧게 끝나는 날들이 다반사지만 잠시나마 동지들과 으쌰 으쌰 하면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약발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모임조차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이를 동반해야 하므로 아이가 칭얼거리거나 잠투정을 부리면 수다의 맥이 툭툭 끊기고 아이를 달래느라 괜스레 진땀만 더 빼곤 했다. 그런 외출 뒤에는 몸이 녹초가 되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아이와 뒹굴뒹굴 거리는 일상이 반복되었고 나는 점점 무기력 해져갔다. 다른 쥐띠 맘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 비해서는 육아에 많이들 적응하고 주어진 상황을 지혜롭게 받아들여 잘 해쳐 나가는 듯싶었다. 물론 그들도 그들 만의 힘듦이 있겠지만 같이 육아에 파이팅해보고자 만든 “으쌰 으쌰” 모임에 이런 나의 고민을 털어놓아 분위기를 쏴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나를 그리고 나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부적응 기를 들어 과연 얼만큼 이해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줄 수 있겠는가?




나에겐 친언니와 동생 같은 친구가 2명 있다. 비록 30살이 넘어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이지만 나의 겉과 속을 다 아는… 나의 아픔과 가족사도 다 아는… 그런 2명의 친구가 있다. 이 두 명과 내가 더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성향의 엄마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모녀 관계를 가진 우리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힘듦을 공유할 때 남들이 이해 못하는 부분까지 이해하고 경험담에 비추어 다독여 주기도 하고 그런 끈끈한 사이다. 그중 멀리 사는 언니가 제일 먼저 출산과 육아를 겪었고 다음이 나 그리고 딩크로 살겠다던 동생도 어쩌다 생긴 아들을 가을에 출산 예정이다. 그리고 보니 언니만 아이를 낳고 싶어 남매를 낳은 케이스인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힘든 나날들을 겪고 오늘을 살고 있다. 언니도 나처럼 “살아 낸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육아에 적응 중”이라고 말한 언니가 그래도 난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시대 어머님들 보다 그 언니가 더 존경스럽다. 성격마저도 어느 일부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졌기에 정확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힘들었을 걸 생각하니 그걸 다 겪어 내고도 아이 둘을 이렇게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할 만한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지는 나는 무언가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했다. 쥐띠 맘들과 만나 보내는 즐거운 시간들 말고, 언니나 동생에게 단순히 토로하는 징징거림 말고, 가끔 기분전환으로 친구들과 먹는 브런치들 말고… 무언가 좀 더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그런 해결책이 필요하다 느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주 1회씩 상담치료를 다녀 보고 싶다고. 요즘은 전문 심리 상담센터들이 많아서 그렇게 전문가들에게 나의 힘듦을 털어놓다 보면 나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짚어 볼 수 있고 내가 모르는 내 안의 나를 찾아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오래도록 꼬이고 꼬인 나와 엄마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그것이 나와 도깽이의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담을 통해 딱히 “도 아니며 모” 같은 흑백 논리의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딱히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고 이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와 같은 해결책은 당연히 없을 거다. 그저 주변인들에게 징징거림에도 한계가 있기에 사람의 아픈 심리를 전문적으로 보고 듣고 어루만져 줄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남편은 “딱히 해결책도 없을 거, 그저 너 하나 맘 고쳐먹으면 다 해결될 일을 왜 굳이 시간 낭비 돈 낭비해가면서 다닌다는 거지? 그럴 거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정신과 의원을 찾아가서 약을 처방받아!”라고 이야기한다. 남편은 이럴 땐 영락없는 남자다. 해결책이 없을 고민 상담 같은 건 그저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느 정신과 의원을 간들 “마음 고쳐 먹기” 의 약을 처방해 주진 않을 것이다.  결국 그 “마음 고쳐 먹기” 란 내가 혼자 해야 할 일인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고 싶은 것이다. 이 도움 또한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고 싶은 것뿐이다. 




남편한테 딱히 허락을 구했던 건 아니고 그냥 나는 이러한 이유에서 상담치료를 받아 보려 하다고 귀띔을 해준 것뿐인데 남편의 반응에 내 기분이 아주 나빠졌다. 더불어 남편은 내 지인들까지 들먹이기 시작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결혼이나 육아에 있어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만 주는 쥐띠 맘들과의 교류가 나와 비슷한 고충을 안고 있어 그것을 들어주며 다독여 주는 10년 지기 지인들보다 낫다고 말했다. 


남편의 그 짧은 생각에서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들 사이에만 있으면 나도 자연스레 그런 에너지들의 힘을 받아 금방 적응하고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나의 현실과 너무도 다른 그 에너지 안에서 내가 느낄 괴리감…. 그리고 그 괴리감으로 더 힘들고 낮아질 자존감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애써 밝은 척 안 하고 있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언니나 동생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 더 평온을 찾는다. 남편은 내가 그들과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나의 삶을 공유하는 걸 싫어한다. 남편은 나랑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 자신의 속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잘 들어내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그들에게 시시콜콜 공유해 봤자 결국엔 그들도 남이고 가족만이 진정 내편이라며 훈계를 한다. 물론 남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들은 결국 남일 수 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나에게 처음으로 안식처가 같았던 사람들이다. 설령 그들이 나에게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나는 그들에게 진심이었기에 나는 괜찮다. 




가족? 나에게 진심 어린 가족이 있었던가? 무늬만 가족은 있다. 금전적으로 풍요롭고 겉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그런 가족…. 하지만 한 번도 내가 힘들 때 달려갈 수 있거나 기댈 수 있는 그런 가족은 아니다. 가족이 있기에 힘들고 외롭고 아팠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만났지만 그 가족의 중심인 남편 역시 아직까지 안식처인지는 확실치 않다.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상대인가 싶다 가도 이럴 때 보면 그냥 남 같다. 


남편은 현재 본인도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 인건 이해한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내가 더더욱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을 테고 이유 없이 계속 징징거리는 내가 마냥 애 같을 것이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쥐띠 맘들하고 만나서 문센이나 다니고 수다나 좀 떨고 이러면 살만 할 거라 생각하는 거 같다. 더구나 우리 엄마 아빠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해서 봐주시는데 도대체 미카는 모가 저렇게까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남편의 속내를 마주할 때면 역시 인생은 self-help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그런 가족의 형태를 남편한테 기대했던 어리석음에 헛웃음만 나온다. 이렇게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가족의 안식처 같음을 언니나 동생에게 느껴보았는데 그런 그들의 정신상태를 나무라는 것은 매우 기분이 나쁘고 열 받을 일이다. 




일반 여성들처럼 출산과 육아를 순리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하고 부정적인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우리의 정신상태는 올바르지 못한 것일까? 그럼 언니와 동생들에 비해 긍정적인 마인드와 에너지를 보여주는 쥐띠 맘들은 그 이유 하나로 올바른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 게 되는 것인가? 또 쥐띠 맘들은 진정 모두가 출산과 육아를 순리대로 받아들여 우리처럼 힘들지 않은 걸까? 사실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남편이랑 결혼하기로 큰 마음을 먹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남편은 진정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아서였다. 내게도 처음으로 진정한 가족이 생기는구나… 이젠 힘들 때 힘들다 기댈 가족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나의 그 판단이 미스였나?라는 의구심이 든다. 


본의 아니게 요즘 브런치에 남편 험담 아닌 험담을 자꾸 쓰게 되는데 작정하고 남편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서로 얼굴 붉히고 대화하는 것보다 이렇게 나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쓰는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걸 매우 싫어할 거다. 이 글을 읽고 남편이 한걸음 더 가족 같은 가족으로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 본인의 스트레스 혹은 그날의 감정 기복과 무관하게… 심적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도 가족 같은 가족으로 내 옆에 있어 달라는 건 나의 욕심일까? 결국 나의 인생은 끝까지 self-help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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