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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ka 도깽이 엄마 Jul 22. 2021

자존감 높은 유미카 aka 자격지심의 도깽이 엄마

자격지심에 사소한 말에 상처를 받는다

나의 20대는 생각보다 암울 했었다. 그때는 자존감 따위를 논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미카라는 자아는 드세고 유별난 부모님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30살이 되던 해 더 숨죽여 살다 가는 내가 죽을까 반란을 일으키고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막연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지만 다행이 내가 찾은 직업은 내 적성에 아주 잘 맞았고 평생직으로 삼아도 되겠다 했다. 그렇게 공부를 때려 치고 정치학 교수가 아닌 영어강사의 길을 택했지만 처음으로 돈도 벌어 보고 내돈내산의 즐거움도 맛 볼수 있었다. 커리어가 한해 두해 쌓이고 인정받기 시작하며 보이기 시작한 나의 자아와 정체성에서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님 한테는 한없이 부족하고 맘에 안드는 것 투성인 딸이지만 나는 나에 아주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본업 외 과외라는 부업으로 수입도 넉넉했고 35세 이후에는 독립해서 내 명의로 된 집도 있었고 연애도 심심치 않게 하고 있었으며 다양한 동호회 활동으로 싱글 동지들이 많아 심심할 틈이 없었다. 학벌이나 집안 같이 남들이 보편적으로 중요시하는 서류상의 점수도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니 내 옆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인연이 아니라 헤어지긴 했으나 스쳐간 인연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왠만한 말이나 사람들에 행동에 크게 상처받거나 아파하지 않았다. 남들이 어떠한 의도로 나를 대했던 내가 그렇게 안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남의 시선조차 그닥 의식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이러면 사람들은 여기는 한국이라 남을 어느정도 의식해야 한다고 하지만 난 아직도 왜 그래야 하는지…. 아니 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의 자존감을 유일하게 낮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겉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은 관계 같지만 엉키고 설킨 실타래 안에서 난 한없이 위축되고 긴장하고 불편하고 그렇다. 어떤 의도로 말을 했던 아님 그냥 아무 의도 없이 말했던 부모님의 말들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늘 아파했다.




남편은 이런 나의 가족사를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것이 문제였을까?

가족애, 부모님과 같은 단어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자격지심에 움츠려 들곤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나의 약점이자 자격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제 그 유일함이 더 이상 유일함이 아니게 되었다.

사람은 보통 내가 가지지 못했거나, 부족하거나 혹은 잘 못할 때 자격지심이 생기고 자존감도 낮아 진다.

예로 피아노를 잘 못치는 사람이 세계적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매일 연습하고 생활해야 한다면 금방 주눅이 들고 자존감도 낮아 질 수 있다. 이건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주 드물게 “난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으니 저들 보다 못치는건 당연해! 내가 저들만큼의 세월을 피아노에 바치면 난 더 잘 할거야!” 라며 높은 자존감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유미카로서의 삶에서는 그 누구보다 자존감 높고 행복했었다.

그런데 도깽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어딘가 모르게 자격지심이 생겨버렸다.

내가 잘 못하기도 하고 아직도 엄마라는 타이틀에 적응기라 그렇기도 하고… 그냥 내가 엄마로서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격지심이 생겨 버렸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말들과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 별 의도 없이 한이야기에도, 그냥 평소처럼 말한 팩트 하나에도 자격지심 가득한 나는 상처받고 아파하고 그런다.


특히 남편의 말에 그렇다.

남편도 참 답답할 거 같긴 하다. 도깽이는 10월이면 돌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엄마라는 타이틀에 적응 못하고 정신적으로 힘들다 징징거리는 내가 이해가 안되고 한심하게 그지없어 보일 수 있다.

나도 그러지 않으려 애쓰지만 나도 모르게 그럴때가 있다. 아마도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 이대로 하면 될 거 같아… 힘들지? 그래도 도깽이는 태어났고 되돌릴 수 없으니 너의 적응기가 쉬워지도록 그럼 당분간 만이라도 내가 더 적극적이여 볼까?” 같은 격려의 멘트가 필요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팩트로 말하기 좋아하는 남편은 사탕발림의 기술도 없기에 난 늘 그의 말에 위축되고 작아지고 말이 없어지고 혼자 훌쩍이고 혼자 삭히다 끝난다.




도대체 내가 왜? 내가 어쩌다 이렇게 자존감 낮고 자격지심 가득한 사람이 되었지?

엄마라는 명칭 하나로 이렇게까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남편의 비수의 꽃힌 말들이 내 귓가에 몇 날 며칠을 맴돌며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나면 몇 날 며칠 또 우울한데 그걸 티를 낼 수 없으니 조용히 삭히게 된다.

하지만 조용히 삭히기에도 너무 아픈 날은 그저 말수가 줄고 필요한 의사소통만 한다.

어떨 때는 그 자격지심 땜에 내가 남편에게 무시 받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한다.

내가 이렇게 만만한 존재였나?

내가 나의 약점을 너무 적날하게 들어내서 날 무시하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인데 엄마로서 그거 좀 적응 못한다고 멸시받고 혼나는 그런 기분이다.

살면서 단 한번도 의지하고 기댈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처음으로 그런 가족이 생겼다는 것에 내가 너무 좋아서 내가 너무 기대였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은 늘 힘들어도 슬퍼도 기뻐도 혼자였는데 그걸 또 잊었던 것이 분명하다.


남편이 나쁜 남자는 절대 아니다.

츤데레라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날 많이 배려해주고 생각해준다.

남편과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들은 참 행복하고 좋은 시간들이다.

하지만 나의 몹쓸 자격지심 때문에 나 혼자 아프고 상처받고 하는 거다.

이런 나의 자격지심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어 내가 상처 덜 받게 말해 달라고 하면 그건 나의 욕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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