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편들은 한결같이 “아이를 적극적으로 보기 (take care) 보다는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look at) 쉬고 싶어한다.” 이렇게 퇴근 후 혹은 주말에 남자들이 아이를 보면 (look at) 진정 아이는 누가 보는 (take care)것일까?
출산을 한 선배들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애가 있기 전 에는 우리도 싸울 일이 없었어! 근데 애가 생기고 나니 싸울 일들이 생겨! 애 때문에 라고하기는 좀 그런데 애 때문인것도 맞긴 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굳이 남편이 무언 갈 하지 않았는데도 밉고 짜증나. 아 머 그래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짜증이 나더라.” 도깽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이 미워질 수 있나? 그들은 단지 감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도깽이를 낳아보니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남편이랑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에는 시댁의 문화도 한몫 했다. 아들만 둘인 어머님은 진작부터 아들들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계셨다. 명절때도 그리고 김장할 때도 남편과 서방님은 분업화된 시스템으로 각자 맡은 역할들이 있었다. 결혼 전에도 그리고 결혼 후에도 부엌에서 어머님의 잔심부름을 도와 드리는 것 역시 아들 며느리 구분없이 누군가 도와 드리는 것이 중요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대신해 남편이 아침상을 거들기도 하고 또 명절 음식 후에는 가끔 아버님께서도 설거지를 하신다. 정말 아름답고 화목하고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 역시 남편이 상당히 적극적 일거라 생각했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남편이기에 그 적극성에도 한계는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보다는 조금 더 열정적 일거라 생각했었다. 남편이 직장인이던 시절에는 그 열정을 다 꺼내어 보기가 쉽지 않았었다. 직장도 경기도권이라 출퇴근으로 왕복 100km를 운전하는 남편이었기에 당연히 밤에도 나나 어머님이 데리고 잤고 퇴근 후 8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오니 그저 몇시간 눈 맞추다 자는 것이 전부였었다. 목욕도 어머님 아버님이 시켜 주시기에 우리는 그저 옷 입히고 로션 바르기 정도가 우리의 몫이었다. 단순히 먹고 자는 시간이 더 많았던 신생아 시절이 끝나 갈 때쯤, 남편은 회사를 그만 두고 백수가 되었다.
보통의 여자들이라면 갈 곳도 정해 놓지 않고 덜컥 회사를 그만 둔 남편이 당황스럽겠지만 난 좋기만 했다. 직장이야 쉬었다 또 구하면 되는 것이지만 아직도 엄마라는 타이틀에 적응을 해 나가고 있는 나에게는 이 벅찬 육아를 남편과 나눌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물론 육아에 적극 동참하고자 그만 둔 것은 아니지만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현실은 조금 달랐다.
남편이 육아를 같이 하고 있지만 무언가 한발짝 뒤에서 지켜보면서 하는 육아 같았다.
뒤에서 적재적소에 내가 필요할 때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선택적인 순간에, 달리 말하면 본인이 귀찮지 않을 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도와주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남편은 말을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하는 편이다. 돌려 말하거나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포장해서 말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신혼 부부들은 결혼 후 가장 많이 다투는 원인 중 하나가 남자들이 집안일을 “함께” 하지 않고 “도와”주는 개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벌이 이던 아니던 다 문제가 된다. 맞벌이라면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빨리 퇴근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하는 것 역시 맞지만 문제는 그 빨리 퇴근하는 사람이 여자가 되면 자연히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남자들 역시 그게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려 점점 본인들이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여자들에게 떠 넘기는 경우를 보았다.
외벌이면 어떨까? 이 역시 그냥 일하는 분야가 다를 뿐이다. 9 to 6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남자는 바깥일을 그리고 여자는 집안일을 책임 지는 것이다. 물론 여자들은 중간중간 쉬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들 역시 회사에서 중간중간 커피 타임도 가지며 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오후 6시면 남자는 퇴근이란 걸 한다. 하지만 여자는 6시가 넘은 시간에도 바쁘다. 저녁도 차려야 하고 먹으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혹시라도 낮 동안 마무리 못한 집안 일이 있으면 그것 또한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주부로 직업을 전향한 여자들은 6시 이후에는 집안일을 함께 분담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을 것이다. 눈치껏 남편들이 너무 피곤해 보이거나 힘들어 보이면 굳이 분담할 일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혼부부들이 문제를 겪는 것은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분담을 하여 함께 하겠다고 서약했으나 결혼현실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귀찮고 하기 싫고 꾀가 나니 와이프들이 해달라고 시키지 않으면 절대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다 슬슬 눈치를 살피고 오늘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와이프가 버럭 하겠구나 싶을 때 즈음 어슬렁거리며 쉬운 일거리를 찾는다.
이런 주제의 대화가 나오면 남편은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 모든 걸 반반 같이 하는 걸 좋아하면 집도 반반 해야지! 왜 결혼할 때는 집은 남자가 해와야 한다는 마인드인데 결혼하고 집안일은 꼭 반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지?”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어렴풋이 알겠다. 현대사회에서 남자들이 점점 불합리 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결혼 후 본인들의 힘듦을 (살림 & 육아) 같이 나누어 달라 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본인들의 힘듦을 호소할 수 없다. 많은 여성들은 아직도 결혼할 때 남자가 주거를 책임져야 한다 생각한다. 또한 결혼 후에는 가장으로써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많은 여자들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기에 힘들어도 투덜거릴 수 없는 경우가 대 다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남자들의 이런 힘듦이 당연하듯 여자들의 가사노동의 힘듦 또한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도깽이가 태어나기 전 남편은 그 누구 보다 가사일을 적극적으로 함께 했었다.
남편은 도와주는 것이 아닌 진정 함께 했었다. 물론 살림을 좋아하고 더 잘하는 내가 더 많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고 당연히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바쁘거나 지쳐 보이면 남편은 적재적소애 나 대신 가사일을 하였다. 남편의 논리를 빗대어 말하면 내가 리더가 되어 팀을 잘 이끌어 가면 남편은 팀원으로써 잘 따라오며 필요할 때 잘 도와주는 그런 환상의 콤비였다. 남편이 늘 말하듯 리더가 여러 명이면 팀이 운영되기 어렵기에 리더는 한명이면 된다는 논리에 부합했었다. 그러니 우리는 싸울 일이 전혀 없었다.
이런 남편이기에 난 두번도 생각하지 않고 결혼을 결정했었다. 남편에게 여자니까, 여자라서 혹은 당연 여자가와 같은 가부장적인 면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도깽이를 낳고 나서 내가 몰랐던 남편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남편이 또래 보다 보수적인 것은 알았지만 가부장적이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이를 달랠 때나, 아이를 재우거나, 이유식을 만들거나, 아이 빨래 혹은 설거지를 할 때는 일단 내 몫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점차 아이 빨래나 설거지는 남편도 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자기는 잘 못하겠으니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우겠다 했다. 그러니 이번엔 나 보고 하란다. 그래서 말로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어른 빨래하듯이 그렇게 하되 세제만 아기용 세제로 넣고 돌리면 된다고. 그러자 남편이 글쎄 이번만은 너가 하란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 줄 테니 옆에 와서 그럼 보고 배우라 하니 그냥 나보고 일단 돌리란다. 그러니까 남편은 애초에 빨래를 돌릴 생각이 없었던 거다. 아기 빨래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에 그 일이 하기 싫었던 거다. 솔직히 말하면 육아에 모든 면에서는 나도 처음이다. 나도 도깽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애기 빨래 한번 해본적이 없어 나 역시 할 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같이 할 줄 모른다 하면 빨래는 도깽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일까?
애를 재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주로 어머님이랑 잠이 들지만 때로 어머님이 외출 중이시면 나나 남편이 재워야 한다. 쉽게 잠드는 날도 있으나 대부분 잠투정을 엄청 부리다 잔다. 몇주 전이였나? 그날도 어머님은 외출중이셔서 우리가 도깽이를 재워야 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유투브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넌지시 던져보았다.
나: 도깽이 자기가 재워라.
남편: 자기가 재워야지
나: 아 왜? 자기가 좀 재워
남편: 자기가 엄마잖어. 애는 원래 엄마가 재우는 거야
나: 아 왜 애는 맨날 엄마가 재워야해?
남편: 언제는 너가 재웠냐? 엄마가 재웠지
그건 맞다. 내가 재운 날 보다 어머님이 재우신 날들이 더 많긴 하다.
아니 그런데 애는 원래 엄마가 재우는 거라고?
세상 이런 가부정적인 마인드가 어디 있다 말인가?
순간 내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 줄 알았다.
그날 나는 진짜 기분이 많이 나빴다. 딱히 말로 설명하기도 애매하지만 남편에게 깔려있는 이 가부장적인 마인드 그리고 오랜 세월 이런 부조리함을 겪으면서도 엄마니까 엄마라서 엄마이니 참았다라는 생각에 이유없는 화가 나에게도 생겼다. 하지만 그날은 맞서서 머라고 하기에는 어떻게 말해야 논리적으로 내가 밀리지 않을지 정리가 되지 않아 일단 참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몇일 전 남편과 이 주제로 대화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남편은 어김없이 팀의 리더와 팀원의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문뜩 할말이 생각났다.
나: … 맞아 팀의 리더는 한명이면 되! 팀의 리더가 여러 명이면 팀은 산으로 갈 테니… 근데 그 리더가 왜 꼭 엄마가 되어야 해?
남편: …
나: 자기가 맨날 펼치는 그 여자들의 반반 논리… 나는 사실 집도 반반 했으니 일단 거기서부터 당당할 수 있어. 그리고 살림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였으니 내가 리더가 되서 하는게 즐거움이었고 그래서 자기가 선택적으로 도와주는 거든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거든 전혀 상관이 없어. 그렇지만 육아는 달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여자라는 이유로 꼭 리더가 되어야 하는 거지? 더군다나 지금은 자기도 일하고 있지 않아 외벌이도 아니라 동등한 조건인데 왜 꼭 내가 떠밀려서 하고 싶지 않은 리더를 해야만 하지? 단지 누군가는 해야 해서?
남편:…..
남편은 내 말에 수궁을 했다. 그렇다고 자기가 더 적극적으로 육아를 해보겠다는 아니고 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너의 말뜻은 알겠다였다. 나도 남편이 하루 아침에 변할 걸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지금 이렇다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말한 너의 말투에 기분이 나빴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내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러한 감정표현 뿐이다. 엄마가 된 걸 되돌릴 수는 당연히 없고 남편을 하루 아침에 바꾸려 시도했다 가는 부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니 점차 나아지겠 거니 생각한다. 나의 생각은 틀릴 수도 있다. 괜찮다. 그때가 되면 어찌 적응해 가고 있을지 모를 나의 마음을 또 지금같이 남편에게 표현하면 된다. 남편이 가부장적이긴 하지만 나의 정신적 힘듦을 무시할 정도로 무심하진 않다.
몇 년 전인가? 82년생 김지영이랑 책이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어온 적이 있다. 그 열풍은 책을 넘어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공유를 주인공으로 써서일까 대다수 여자들의 반응은 “현실에는 저렇게 와이프를 자상하게 생각해 주는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남편은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니냐” 였다. 비현실적인거 맞다. 하지만 아무리 공유 같이 잘생긴 남편도 엄마니까, 엄마라서, 엄마이기에 라는 마인드면 반갑지 않다. 80년생 미카언니도 82년생 김지영이랑 크게 다른 삶을 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옆집 85년생 수진이도 앞집 87년생 주하도 그리고 윗집 79년생 은혜 언니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난 82년생 김지영이 아닌 80년생 유미카 인데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삶을 살고 같은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그래서 나는 내일부터 80년생 유미카만의 육아의 삶을 찾아보고자 한다. 남편의 협조가 절대적이겠지만 나부터 모성애 프레임에서 한발짝 물러나 육아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나의 마지막 멘트에 비웃을 남편이 눈 앞에 선하다. “너같이 모성애가 없는 애가 왠 모성애 프레임 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