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도일 줄은몰랐어..."
아기가 52일 되던 그때 내가 가졌던 그 꿀 같은 휴식은 생각만큼 꿀 같지 않았다. 손가락 부상 이전의 달콤할 것 같았던 대략 7시간의 그 휴식이 왜 꿀 같지 않았는지는 나에게 쭉 미스터리였으나 134일째가 되어서야 풀려 버렸다.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고 130일이 조금 넘었을 때, 남편과 나는 어머님 아버님을 따라 시골을 내려갔다. 결혼 전에도 한번 내려 간 적 있었으나 워낙 멀어서 자주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기회에 친척분들께 도깽이도 보여드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남편이랑 단둘이 도깽이를 2박 3일이나 돌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 난 엄청 이기적인 며느리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어머님 아버님께 죄송하다고 한마디 적어야겠다.
4시간이란 긴 여정이지만 갈 때도 나와 남편은 따로 가며 데이트 분위기도 낼 수 있고 또 오래간만에 여행 가는 분위기도 날 것 같고 해서 가기 싫다는 남편을 졸랐다. 도깽이는 뒷좌석에 타기만 하면 멀미하는 엄마 때문에 할아버지 차를 타고 갔는데 생각보다 보채지도 않고 잘 갔다고 전해졌다. 역시 나랑 남편은 아직도 아기 달래기에 미숙한 것 같다.
애초에 2박 3일이 목표였으나 남편은 1박만 하겠다고 고집하여 나랑 남편은 서울로 올라오고 도깽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1박을 더 보낸 후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오는 그날의 밤공기는 그 어느 때 보다 상쾌했다. 이 음악 저 음악 들으며 오래간만에 즐기는 사색 중 남편과 나는 진지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냥 가볍게 시작된 대화가 어느덧 무거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육아라는 패턴에 그리고 엄마라는 타이틀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난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왜 일까? 왜 난 아직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이때 남편이 이야기한다.
“미카는 역시 일할 때가 제일로 미카다워…. 출근해서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고 퇴근 후 과외도 1개 하고 그렇게 치열하고 알찬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만끽하는 나만의 시간….
그 시간이 그립지? 잠을 좀 못 자더라도 내가 누리는 그 2~3 시간의 꿀 같은 휴식!
커피 한잔에 보는 밀린 예능이나 미드… 아니면 또 신나서 준비하는 다음 날 수업자료들….
그런 모습이 가장 미카답고 그때의 미카가 제일로 행복해 보여…
지금은 출근도 안 하는데 피곤하고 맨날 피곤하고 뭔가 푹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고 그렇지?”
신기했다 나도 몰랐던 내 감정들을 남편은 어떻게 알았지? 내 맘속을 헤집고 나왔나?
처음엔 남편의 말들이 순간적 위로가 되는 듯했다.
누군가 내 맘을 알아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맘이 울컥했다.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남편이 묻는다.
“자기는 알아?” 내가 반문했다.
“휴식의 질이 달라서 그런 거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알차게 보낸 하루….
일하고 싶을 때 일했고 그 일이 끝나고 휴식하고 싶을 때 휴식하며…
알차게 보낸 만큼 달콤하게 재충전이 되었던 과거의 나와 달리 육아는 그렇지 않아서 일거야….
육아를 하는 것도, 쉬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애가 자야만 혹은 누군가 애를 봐줘야만 쉴 수 있고 반대로 컨디션이 좋아서 육아할 준비가 되어있으나 애가 자버리면 그 에너지는 쓸데없어지고, 에너지가 식어 이젠 쉬고 싶을 때 아이는 다시 깨고…. 머 이런 거 아닐까?”
갑자기 얘기를 듣고 있자니 화가 슬슬 치밀었다.
맞다! 그 이유다! 내가 딩크를 고집했던 이유! 설마 몰랐다 하지는 않겠지? 내가 충분히 설명했었으니…
“맞아! 내가 전에도 설명한 적 있었지? 난 이래서 육아가 하고 싶지 않았음. 내 인생인데 주도권이 나에게 없고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먹고 싶을 때 못 먹고 하고 싶을 때 못하고…. 자긴 내가 이렇게 힘들어할 거라는 거 몰랐어? 내가 전에 얘기했었는데….” 내가 물었다.
남편에게 돌아온 그 대답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어! 난 솔직히 네가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어! 엄마 아빠랑 공동육아를 하는 세팅이면 당연히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음… 지금도 육아는 한 50% 밖에 안 하잖아.”
장난하나?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난 내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기에 딩크를 고집했던 건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고? 말인가 막걸리인가?
내가 무슨 실험 대상이니?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무리수라고 했는데 왜 자기 맘대로 “…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섣부른 판단을 했던 것일까?라는 생각에 몹시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쁘다 못해 내가 무시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육아라는 현실에 처해버린 상황에서 남편에게 기분 나쁘다 내색해서 무얼 하겠나?
남편은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 것뿐인데…
하지만 이 기분 나쁨은 몇 날 며칠 동안 날 기분 나쁘게 했고 때로는 그 감정이 숨겨지지 않아
남편한테 무의식 적으로 툴툴거렸을 수도 있다.
그럼 남편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뭐지? 저 여자는 이유 없이 삐지 거나 화내는 여자가 아닌 줄 알았는데… 내가 속은 건가? 결국 미카도 여자인 건가? 난 잘못한 게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