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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an 10. 2018

플라톤의 저작들에 관하여 2

- 플라톤 철학은 서양철학의 놀이터

진리의 탐구

플라톤은 어린 나이에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플라톤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청년 플라톤을 철학자로 만든 가장 강렬한 자극은 진리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스승 소크라테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시조(founder)'로 만든 것은 오히려 플라톤이었다. 자신의 다양한 저서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 진리의 탐구 영역을 확장시켰다.


진리에 대한 열망을 실천한 대가로 죽음에 직면한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플라톤은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 보다 편안한 삶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렇게 진리를 탐구하는 삶이 그냥 사는 것보다 훌륭한 삶이라 확신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처음이 아니라 언제나,
추론해 볼 때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이는 원칙(logos) 이외에는
내게 속해 있는 다른 어떤 것에도 따르지 않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네.
그러니 내게 이런 운명이 닥쳤다고 해서
내가 이전에 말한 원칙들을 지금 내던져 버릴 수는 없네.
- <크리톤> 中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에 대한 견고한 자세,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기세는 어쩌면 나름의 논리로 이끌어낸 자신만의 내세관 때문일 수도 있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혼의 불멸성을 논한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이 죽을 때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분리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혼은 불멸한다는 것이다.


일견 이러한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려 했던 소크라테스의 logos가 플라톤적 이분법의 단초를 제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성과 감정, 남성과 여성, 정신과 육체라는 플라톤의 이분법적 사유는 결국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모든 철학자의 고민이었던 삶과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불멸하는 혼과 단지 물질로서 결국 사멸하는 육체를 분리했던 소크라테스의 사고가 확장된 것은 아닐까.    

  

정치적 진리

한편 플라톤의 업적 중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를 정치적으로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르기아스>는 이러한 추측의 증거를 제공한다. 이 저서에서도 역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빌려 수사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논의는 정치의 문제로 확장된다.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와의 논박을 통해 수사술이 무엇인지 규정한다. 즉 수사술은 ‘대중들을 상대로 정의와 부정의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설득의 기술’임을 도출해낸다. 수사술의 강력한 힘을 믿는 고르기아스, 그리고 폴로스의 주장에 소크라테스는 수사술은 요리술과 같은 아첨술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수사술이 진정한 정치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수사술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여기서의 ‘중요성’이란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어떤 것의 중요함은 선함과 악함 모두와 관련한다. 선하기 때문에 중요하고 악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하기 때문에 중요하며 동시에 악하기 때문에 중요할 수 있다.


오늘날 수사술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감소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수사술은 다양한 형태로 변이되고 확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맥락 없는 자극성 기사가 전해지고, 정치인들은 TV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한다. 심지어 일반 시민들도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논리와 자신의 감정을 수사적으로(rhetorically) 표출한다. 이것은 수사술의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술의 확장이자 진화라 할 수 있다.


수사술이 선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진실을 쫓아 혼을 설득하는’ 정치술의 의도를 담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술의 진정한 의미는 수사술을 통해 더욱 빛날 수 있다. 폴로스의 말처럼 수사술은 “타인을 다스릴 수 있게 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그러한 수사술은 그 안에 선한 의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정도만큼 더 나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참이었네.
그리고 올바른 연설가가 되려는 자는 따라서 정의로워야 하며
정의로운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네.
- <고르기아스> 中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탐구한 polis에서의 진리를 보다 일반적인 정치적 진리 탐구로 확장하였다. 그렇다면 정치적 진리는 무엇일까? <국가>를 비롯한 플라톤의 중·후기 저작들부터 유추해 본 정치적 진리의 속성은 ‘선을 향한 의지의 실천’이다. 선을 향한 의지는 곧 정의(justice)가 될 것이다. 이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빌려 내세우고 있는 말하는 “철인 정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철학자는 진리를 알고 있으며 풍부한 경험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적 진리의 탐구는 polis라는 정치적 공간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국가(Politeia)>에서 소크라테스는 polis와 정의를 논한다. 그는 정의를 개인의 정의와 국가(polis)의 정의로 구분하고 국가의 정의를 먼저 논의한다. 폴리스는 사람들의 필요성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분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따라서 분업은 국가 정의의 제1의 근거가 된다.


아울러 소크라테스는 최선자들의 정체와 철인 정치를 논하면서 이에 변질된 정체들을 논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정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단서는 다른 책 <정치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체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값을 하는 진정한 정체는
필연적으로 그 (통)치자들이 겉으로만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실로 지식을 갖고 있는 정체일세.
- <정치가> 中     

이데아

글 '플라톤의 저작들에 관하여 1'의 초두에 꺼냈던 컴퓨터 게임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컴퓨터 게임 속 멋진 캐릭터들은 안타깝게도 허상이다. 프로그램 언어로 조작된 숫자와 알파벳의 묶음일 뿐이다. 캐릭터들의 화려한 모습은 거짓에 가까운 사실이며, 정작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미건조한 프로그램 언어가 진실에 가깝다. 아름다운 허상 속에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기에 프로그래머들은 그 멋진 캐릭터들을 볼 때마다 괴로울 수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미건조한 수많은 숫자와 기호들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조립되어 캐릭터의 동작이 되고, 어떤 프로그램 언어가 결합하여 캐릭터의 모습이 되는지 알게 된다면,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짜릿하고 놀라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게임 속 허상은 '사실'에 가깝고, 그 속의 프로그램 언어는 '진실'에 가까우며, 그 언어들이 조합되는 이치는 수학적 '진리'에 근접(approximate)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예가 플라톤이 <국가>에서 논한 동굴의 비유, 이데아(IDEA)와 일맥상통한다고 한다면 논리적 비약일까?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

'플라톤의 저작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에세이를 써보았다. 각각의 저서들을 읽으며 생각해 본 일종의 주관적 해석임을 밝힌다. 플라톤의 다양한 저서들은 다루고 있는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모두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많고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플라톤 사상의 늪에 빠져 보지 않고서는 서양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20세기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사상을 숭배하면서도 동시에 곳곳에 널부러진 플라톤 사상의 모순과 허점을 파헤쳐왔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허점이야말로 플라톤 철학의 위대함일지 모른다. 서양철학이 마구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플랫폼'을 제공하는 셈이니 말이다. 플라톤이 저서에서 풀어놓은 수많은 논의들 속의 모순과 허점은 우리가 플라톤의 사상에 “각주”를 달아볼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


지적 사유와 지식의 부족으로 이쯤에서 파장(aporia)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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