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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Oct 19. 2023

라볶이와 암막커튼

오늘을 끝내고 싶다.

오늘의 일상은 신분당선을 타고 2호선에 내렸다가 다시 2호선을 타 경의선으로 환승하고 다시 3호선을 경유하며, 그렇게 흘러갔다. 5시간을 책상에 앉아 모니터와 씨름했고 3시간 동안 서서 이빨을 털었다. 4시간 정도를 지하철 속에서, 1시간을 전철역 플랫폼에서 보냈다. 가방은 다리를 휘게 할 정도로 무겁다.


두 끼의 끼니를 겨우 챙겨 먹었다. 아침을 거르고 챙긴 이른 점심엔 콩나물비빔밥을 먹고 저녁 8시가 훨씬 넘어서야 저녁을 챙겼다.


꾸르륵 배고픔은 탄수화물이 가득한 음식으로 내 입을 끌어당겼다. 집에 가는 길에 괜스레 회기역에 내렸다. 주변을 서성이다 김 씨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김밥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갔다. 라볶이와 김밥을 주문하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라볶이에는 탄수화물의 정수들이 담겨 있었다. 떡볶이떡, 라면사리, 오뎅. 야끼만두의 두꺼운 튀김옷 속엔 이름 모를 야채 속이 씹다만 찌꺼기처럼 들어있다. 이 모든 탄수화물 조각들에는 시뻘건 양념 고추장이 질퍽하게 휘둘려 있다. 고추장은 고춧가루와 쌀로 쒼 풀로 만든다. 라볶이는 탄수화물 덩어리를 탄수화물 액체에 담가 끓여 만든 셈이다.


라볶이 한 접시를 모두 비웠고, 알 수 없는 더부룩함에 검은 설탕물에 탄산을 때려 넣은 콜라를 마셨다. 아랫배가 불룩 나와 귀갓길 지하철 좌석에 앉은 내내 숨쉬기가 곤란하다.


입 안이 텁텁하다. 카페인 가득한 에스프레소 한잔이 몹시 그립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면 이 길고도 텁텁한 하루를 종결짓지 못한 채 이불속을 후비적거리며 온 밤을 새야 할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다. 오늘밤엔 불을 모두 끄고 암막커튼을 견고하게,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차단한 깜깜한 방에서 깊은 잠을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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