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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라켓 피자삽

가끔은 닭 잡는데 도끼를 써도 괜찮다

by 마이크 타이프

와인바를 개업한 지 어느덧 3개월째, 새로운 안주, 이른바 '치즈 듬뿍 씬 피자'를 메뉴에 포함시켰다. 손님들이 "요기될 만한 게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자주 전하곤 했는데 혼자 바를 운영하는 내 입장에서는 안주 메뉴를 쉽사리 늘릴 수는 없는 입장이다. 생각보다 생각할 게 많다.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가게 분위기에 어울릴지, 식재료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로스율이 높지는 않을지. 마진율이 너무 낮지는 않을지.


그래서 고민 끝에 가장 무난하고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메뉴를 골랐다: 피자. 냉동 피자를 구입해서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 토핑을 듬뿍 올려 에어프라이에 굽는다. 마음 같아선 도우도 직접 반죽하고, 전문 오븐이나 화덕에 구운 피자를 제공하고 싶지만, 피자 전문점이 아니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성의 없이 그냥 냉동피자를 그대로 데워 내어 주기는 미안하고, 그래서 치즈라도 듬뿍 추가했더니 손님들의 반응이 꽤 좋다.


며칠 전에도 남자 손님 세 분이 방문해 화이트 와인과 피자를 주문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저녁 식사를 못 하고 와 배가 고프다는 말에 피자를 추천했다. 나는 서둘러 모차렐라 치즈 토핑을 추가한 냉동피자를 에어프라이에 넣었다. 온도 230도, 조리 시간 11분에 맞추었다. 조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화이트 와인과 와인잔, 칠링 바스켓, 그리고 안주가 나오기 전에 주전부리로 먹을 견과류를 제공했다.


땡, 조리 완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에어프라이어 문을 열고 피자를 꺼내는데! 큰일 날 뻔. 피자 삽이 없어 스패출러(spatula)라 불리는 작은 주걱으로 피자를 꺼내다가 피자가 뒤집어져 땅에 떨어질 뻔한 것이다. 피자가 땅에 떨어져 또다시 새로운 피자를 데우기라도 했다면 또 11분. 배고픈 손님의 지치고 초조한 눈빛이 머릿속에 오버랩된다.


서빙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쿠팡으로 들어가 '피자 삽'을 주문했다. 지름 25센티짜리 피자를 꺼낼 정도의 아담한 크기의 피자 삽이면 충분하겠군. 다음날 바로 배송되는 로켓배송 제품인지를 확인하고 바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함께 주문한 피자칼과 함께 커다란 박스가 가게 앞에 배송되어 뜯어보니 피자 삽이었는데, 그것의 크기가 문제였다. 아담한 사이즈의 피자 삽이라 여겼는데 테니스 라켓만 한 것이 왔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커다란 화덕에서 하얀색 요리모를 쓴 전문 요리사가 커다란 피자 삽으로 커다란 피자를 꺼내는 장면, '세계로 간다'와 같은 여행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를 방문해 영상을 찍을 때 어김없이 나오는 그런 장면. 그런 곳에서나 볼 법한 커다랗고 기다란 피자 삽.


어이가 없어 나오는 웃음이 나왔다. 닭 잡는데 도끼를 쓴다더니 내가 그 꼴이구나. 누가 보면 정통 이탈리아 화덕 피자 굽는 줄 알겠어. 피자 삽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려봤더니 팔로워인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남겼다. "이참에 화덕도 하나 장만하시죠." 진짜 그래볼까, 생각하며 커다란 피자 삽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어본다. 1센티 정도의 여유를 남기고 겨우 들어가는구나.


단출한 피자 안주 내가는데 피자 삽을 쓰자니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좀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 것 같다. 그렇다고 이왕 산 피자 삽을 그냥 반품하자니 그것도 귀찮고.


그래서 비록 냉동피자지만 피자 삽에 걸맞게 좀 더 업그레이드시켜 보기로 작정한다. 냉동실에서 피자 하나를 꺼내 우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냉동피자를 에어프라이어에 곧바로 넣고 데우면, 피자 도우의 끝이 너무 딱딱해진다. 원 제품에 치즈 토핑을 추가하다 보니 피자 도우가 익는 시간과 피자 치즈가 다 녹는 시간의 차이가 더 커지기 때문일 거라 예상해 본다. 그래서 우선 냉동피자를 전자레인지에 3분 간 데운 후 에어프라이어에 옮긴다. 230도에 5분. 치즈가 노릇하게 구워지지 않고 덜 녹은 부분도 있어 다시 3분을 추가해 돌린다.


드디어 테니스라켓, 아니 피자 삽으로 피자를 꺼내 피자 커터로 8등분한다. 한 입 먹어보니 맛이 괜찮다. 하지만 아직 피자 삽에 걸맞은 맛이 아니다. 루꼴라를 올려본다. 그리고 등분된 피자 각각에 바질 페스토도 올려 다시 맛을 본다. 훨씬 좋아졌다. 바질의 풍미가 입안에 돌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정도면 손님들이 만족할 거란 확신이 든다. 이 정도면 피자 삽이 부끄럽지 않다는 자신감도 붙는다.


업그레이드된 피자 안주 레시피가 완성됐다:

1. 냉동피자에 모차렐라 치즈 100g을 올린다.

2.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 간 데운다.(700W 기준)

3. 약하게 데워진 피자에 루꼴라를 얹고,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데운다. 230도, 8분.

4. 조리가 완료되면 피자 삽으로 피자를 꺼내 도마에 올리고 피자 칼로 8등분한다.

5. 바질 페스토를 피자의 양 끝에 토핑한다. (이렇게 하면 피자 조각을 처음 한 입 물때, 그리고 마지막에 바질의 풍미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6. 피자 삽으로 피자를 접시에 옮긴 후 파슬리 가루를 피자 위에 토핑해 서빙한다.


닭을 잡는데 도끼를 쓰다 보면 도끼에 걸맞은 짐승도 찾기 마련이다. 알맞지 않은 게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은 건 아닌 것 같다. 너무 큰 옷을 골랐다면, 반품을 해도 되지만,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해 덩치를 키워 옷에 몸을 맞추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피자 안주가 테니스라켓 만한 피자 삽 덕분에 좀 더 좋아졌다. 손님이 오면 '치즈 듬뿍 씬 피자', 아니 "치즈 듬뿍, 루콜라 바질 페스토를 올린 씬 피자'를 추천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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