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간으로 떠나야 하는 부천의 사람들은

<올리브빛 감정선> - 57

by 하 연

예술은 수많은 세상과 사람들의 맥락을 하나로 비약하는 문화다.


때로는 예술가 자신의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고통을 비약하기도 한다.


초공간으로 떠나야 하는 부천의 사람들은

추석의 대보름달에 휘영청 어디론가 다들 떠내려가고 없었다.


물과 보름달의 계절인 올해 2025년의 가을은

아직 겨울을 모르는 아이들과, 여름을 견뎌낸 어른들의 이상과 현실이 정면충돌하는, 먹구름 속 스노우볼과도 같았다.


스노우볼이라니, 따지자면 레인 볼이었겠지만.

그런 딴죽은 바다 건너 명필들의 세상에서나 통용될 것이다.


물론, 나의 책들은 나의 가장 커다란 자산 중 하나이지만.

요즘 나의 컬렉션에 조금 소홀했던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때론, 나는 글을 쓰는 것에 글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의 방대함이 압축되어있음을 느낀다.


대자연을 기술하는 수학과 물리학 이론들에 비하면 그러한 정밀함의 농도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모두가 타고난 인간의 추상 지능은 그런 식으로 단순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나의 음악 컬렉션을 꺼낼 때마다 뼈저리게 느낀다.


초공간으로 떠나야 하는 신중동의 사람들은

아픈 관절과 오래된 마음들을 한껏 동여매고, 비 오는 대보름의 명절에도 저마다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기에, 지금은 남아있어야 했다.

나의 글들이 다만 건조하게 읽혀지는 것은 글을 쓰는 당시의 감정이 아닌, 당시의 순수한 추상만을 담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할까?


최초의 독자는 언제나 나다.

최초의 작가는 언제나 모두다.


글에 감정을 담는 법은,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감정을 담는 예술은 따지자면 문학이 아닌 미술의 분야다.


따지자면, 사람들 간의 대화가 아니라 음악의 역할이다.


전자기파, 그리고 음파의 정형(整形)적이고도 정현(正弦)한 대자연의 법칙을 가장 감정적으로, 이용하는 예술의 갈래이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것들은 특히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서만큼은,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감정은 순수하게 내면적이고도 또 내밀한 존재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성은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추상들과 모닥불처럼 함께 타오를 때 빛을 발한다.


줄곧 과학과 예술은 동류라는 지론을 내세워온 나였지만.

인류가 가장 끔찍이 아껴야 할 이 두 녀석은 정확히 이런 차이를 안고 있다.


예술이 사람들에게 향유되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감정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다.

심각하고도 위험한 결함이 있는 것이다.


마치 과학에 이성만을 담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수많은 역사적 교훈들처럼, 우리 모두의 거울상처럼.


어느새 10월의 이슬은 제법 차가워졌다.


초공간으로 떠나야 하는 원미동의 사람들은

오늘도 부천의 고독한 새벽을 지키고 있었다.


하마다 킨고의 <Modern Times>만이 적막한 공허에 휘감긴 춘의동의 마지막 공장지대를 쓸쓸히 채워나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제어공학과 전력공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뿐인 삶을 살고 있었다.

올해도 1년에 한 번씩 찾아온 나 자신의 싸움마저 다만 나는 담담히, 즐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평생에 걸쳐 작품 하나를 갈아내고, 끌어내고, 닦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시는 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기에, 이렇게밖에는 줄여볼 수 없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새로 만들었다는 영원한 거인의 스믈 여듧 자를, 멀고도 가까운 후손인 나는 무위도식하고 있었다.


21세기의 사분면 하나를 지나는 고독한 겨울을 헤매고 있었다.


초공간으로 떠나야 하는 춘의동의 사람들은

오늘도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오늘날의 부천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이화가 만개하는 우리의 밤을

방황이란 이름의 방패로 지켜나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https://youtu.be/1GhoI6faCOs?si=PpeX6kKgm-T3FueW

Hamada Kingo - <Modern Times>

본문에 인용된 노래의 유튜브 링크를 첨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카고 크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