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감성수필
이제는 닳고닳을 정도로 오래된, 흑백의 8 x 8칸짜리 정사각형 격자판 안에서 벌어지는 체스(Chess)라는 게임은 그 이론만큼 인공지능 또한 굉장히 오래되어 잘 알려져 있다.
체스 게임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추구하는 이상적인 전략이 조금 다르다.
인공지능은 최소한의 수로 승리를 만들기 위하여
그 어떤 복잡한 수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게임을 직관적으로 단순화하여
언제나, 상대방과의 격차를 '굳히려' 한다.
둘 다 게임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잘 정립된 체스 이론들이 숱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판을 읽어가며 게임을 진행할 때 고려되는 안정도(Stabillity)라는 개념이 인간과 인공지능에겐 조금 다르게 여겨지는 셈이다.
때론 글이라는 것을 쓸 때도, 글을 쓰지 않을 때와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체스에서 위협을 만들어내는 탁월수란 언제나 폭풍전야처럼
얼핏 보기엔 평화롭기만 하다.
감성과 상상이란 인간 본연의 조건이다.
감성은 인간에게 내재되는 것이고, 상상은 경험을 기반으로 완성된다.
언젠가 교양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 강의 중에 하셨던 말인데, 인상깊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는 전 세계 사람들과 점수를 경쟁하며 가볍게 체스를 두다가 문득, 여기서 생각이 멈추었다.
사람이 이 세상 무엇이든 감정을 100% 덜어내고 대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말해 이런 경우엔 불안감과 두려움이 존재하여 인공지능과는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조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들이 있다.
게임의 목적과 인간의 직관이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을 때, 우리는 게임의 목적 그 자체보단 우리의 직관을 목적에 들어맞게 만들기 위한 조정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실제 게임 플레이의 스타일로 표현되든, 플레이어의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든 그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치 않다.
체스라는 게임의 승리목적은 상대방의 킹(King)을 바로 다음 차례에 잡힐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체크메이트(Checkmate)란 킹이 바로 다음 수에 잡힐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위협하는 기물을 제거할 수도 없고, 자신의 기물로 그 공격을 가로막을 수도 없으며, 킹이 이동하여 피할 수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단 하나, 나이트(Knight)는 상대방의 기물을 뛰어넘어 공격하기 때문에 나이트의 체크로 완성되는 체크메이트는 가로막는다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예외도 있다.
어쨌든, 나의 기물들은 그저 공격 기회, 말 그대로 소모되는 게임말에 불과한 것이다.
여덟 개의 폰, 두 개의 나이트, 비숍, 룩,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퀸을 모조리 적에게 헌납하더라도 체크메이트만 만들어낸다면 게임의 승리목적을 '완벽히'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임 스톤으로 약 1,400만 개의 미래를 확인한 후 타노스를 이길 수 있는 경우가 딱 하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고도로 발달되다 못해 나이를 먹어 성숙해진 체스 인공지능들은 항상 그렇게 플레이한다.
사실, 인간 중에서도 제 8대 체스 세계 챔피언인 미하일 탈(Mikhail Tal) 같은 사람들이 그런 플레이를 구사하곤 했던 역사가 있지만, 그는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예외와도 같은 존재였다.
인간이 쉽게 보지 못하는 수를 찾아내어 마법같은 공격을 가하는 그의 화려함에, 사람들은 아직도 소비에트 연방이 살아있던 시절의 그를 회자하곤 한다.
복잡한 틈을 찾아내는 인공지능같은 플레이지만, 사실은 그의 그런 플레이도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스의 희생에는 두 유형이 있다. 옳은 희생, 그리고 나의 희생.
There are two types of sacrifices: correct ones, and mine.
타고난 천재였던 미하일 탈은,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리고 후대의 체스 인공지능들이 그의 생전 플레이를 분석해본 결과, 게임을 자칫 패배로 끌고갈 수도 있는 위험한 수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밝혀낸 체스 인공지능의 뛰어난 계산 능력이 아닌 미하일 탈의 대담함에 더욱 열광한다.
나는, 감성이란 인간의 고유한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수십 년이나 된 체스 인공지능조차 안정도를 중시하는 인간의 플레이를 볼 때면, 그저 '게임을 후반부로 길게 끌고 가려는 수'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그것을 나쁘다고 평가하지도 않지만, 아주 탁월하다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명백하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개발되어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따지자면 목적이 아니라, 직관을 타고난 존재다.
인공지능은 정확히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성이 인간 고유의 무언가라고 해서, 인공지능이 그것을 가지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감성을 100% 덜어내고 대할 수는 없는, '상상' 이라는 것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상상이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 경험을 기반으로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인공지능의 계산 행위는 상상의 조건에 명백하게 부합할 수 있다.
상상이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창의력도 조금은 어디선가 빌려온다는 것이다.
기계학습과 인간의 학습엔 차이가 있더라도, 결국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결국 상상과 구현에 인간의 감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본 그 미래가 결국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접어들었듯이, 우리는 불안함을 모르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상상과 구현을 보면서 언제나 체스의 후반부, 즉 엔드게임(Endgame)을 맞이하고 풀어내야만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실수를 하는 것에 그 어떠한 수치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감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상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불안감은 때론 방해만 될 수도 있고, 무언가를 극복하는 연료가 될 수도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
여기서 얻어갈 수 있는 결론이 있다면, 바로 포기하지 않는 칠전팔기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런 불굴의 경험만이, 때로는 더 멋진 상상 속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조금 진부할 수도 있지만, 요즘 시대에도 중요한 감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