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새벽을 궁극의 이론으로 도약하자

<올리브빛 감정선> - 54

by 하 연

때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소리의 질감과 아스팔트 노면의 매끄러움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의 새벽은 끝이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끝이 있는 인간이다.

인간(⼈間)은 기본적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한자어라고 하지만, 우리는 주로 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그리고, 시간(時間)은 인간의 모든 것을 만든다.

삶과 죽음, 불행과 행복, 인간의 모든 경험과 모험, 행동과 지식, 이론과 현실을 만드는 절대자이다.


시간에 의하면 인간은 혼자가 아니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는


각각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의하면, 인간에겐 음악이 있다.

따지자면 반드시 시간에 의존하는 녀석이다.


우리가 그러한 터전과 공간축을 특별히 시간이라고 칭하는 것은, 구체적으론 어떤 까닭일까.


아이팟과 전화기, 인터넷 통신기기를 합쳐서 탄생한 풍운아를 손에 쥐고 다니는 우리들은, 언제나 지구의 풍운을 몰고 다닌다.


인간들이 멋대로 바람을 느끼고, 멋대로 시간 위를 흐르며 도약할 뿐이라지만 지구의 풍운 또한 끝없는 새벽 속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나태함이란 그런 우주의 본질적 속성에 충실한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조차 나태함이라면, 우주의 본질이 그러한 것이다.


과거를 사는 사람들이 미래의 언어를 읽지 못하는 것도, 본질적인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라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나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의 음악을 찾게 만든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속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느린 시간을 살아간다.


느린 시간을 살아간다고 해서, 나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성실하고,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끝없는 새벽을 궁극의 이론으로 도약하자.

그러기 위해선 음악,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필요한 것들이 많다.


음악과 수학의 공통점이란 우리가 타고난 지역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 보편언어라는 점이다.

세상엔 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 또한 끝없는 새벽을 경험하고 살아간다는 것만은 같다.


모든 것이 풍족한 삶인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내면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내면은 오로지 보편언어를 통해야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궁극의 이론이라는 녀석의 정의다.


보편언어란 모든 인류에게 주어지는 햇빛과 달빛뿐만이 아닌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이야기란 본디 보편언어로 써내려가기엔 너무나 고되다.


모든 인류를 아우르는 보편언어가, 정작 특정 문명의 고유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모순이라면 정말 모순이다.


아니, 그렇지만 진짜 모순은 그 반대일까.

고유언어를 보편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가 상호 모순, 상호 충돌이라면 이것은 과연 보편일까?

이것이 과연 언어일까?


궁극의 이론은 과연 궁극도 이론도 아닐까?

그렇다면 도약이란 어떤 것일까.


나의 고민들은 반드시 과거의 누군가가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바로 그 흔적들이다.


불가능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아무리 믿기 힘들지라도 진실이라고,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어느 탐정은 자신의 고유언어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그 이야기만큼은 보편언어다.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어떠한 공통된 심상을 부여하는 한, 그것은 고유언어이기 이전에 보편언어다.


그렇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사실은 우리들의 전통 문화보다도 오래된 것이었다.


수학은 이야기를 건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음악 또한 사실 이야기란 없는 것이다.


이야기란 우리들의 허상이다.


허구를 표현하는 것은 보편언어가 아닌 고유언어다.


마치 이 끝없는 새벽에 사치스러운 보석같아 보이지만, 실은 사치라기보단 대가를 치러야만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부분과 같다.


음악도 수학도 대가를 치르며 만드는 것이다.

햇빛과 달빛 또한 지구가 그 대가를 먼저 치르며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오로지, 보편언어 중 유일하게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끝없는 새벽 속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바람 한 점뿐이었다.


그리고, 바람을 대가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자동차도 새벽도 아닌 춘의동의 마지막 공장지대와 그곳의 노동자들이었다.


예를 들면 뜨거운 중력장에 지쳐 쓰러지는 별들을 식혀주는 바람에, 스치운 별들이라던지.

아인슈타인이 만들고자 했던 궁극의 이론 또한 그곳으로 우리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바람으로 되돌아온다.

지구가 불어젖히는 모든 바람들은, 모두 각각의 바람들이다.


이를 테면, 사랑에 대한 소년소녀들의 바람이다.

젊은 나날과 인생의 바람이다.


춘의동의 마지막 공장지대는, 오늘도

우렁찬 기계공학의 산물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함께


부천로의 한구석을 한가득 빛내고 있었다.

이것은, 명실상부 궁극의 이론이다.


공장의 불을 밝히는 소시민들은, 오늘도

끝없는 새벽의 끝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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