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로 향하는 탈출로

<올리브빛 감정선> - 29

by 하 연

공사 현장으로부터 방치된 안전장비가

완성품의 안전장치로 기능할 때가 있다.


인부들이 보기엔 답답하기만 했던 방화 댐퍼가

미래에, 완성된 거대 증기기관의 폭발을 막았다.


보름달이 구름을 비추는 밤하늘이 보였다.


우리는, 언제나 탈출로를 만들어두어야만 한다.


때때로 길이 길을 가로막을 때도 있지만

사실은 길이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내가 가로막은 것이다.


종종 우리는 사건의 탈출로를 백도어(Backdoor)라고 부른다.


엔진과 바퀴 사이의 소란을 중재하는 트랜스미션(Transmission)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Mission)이 있다.


퀘스트(Quest)가 질문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미션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작 아이템, 그 자체다.


그렇다고 해서, 백도어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탈출로는, 수많은 무지와 불화를 견뎌낸 예술 작품이다.


“그런 거 만들 시간에, 하던 일이나 해!”


우리들의 추억은 탈출로가 아니었다.

아르카디아로 향하는 탈출로, 그것은 필수품이었다.


허나, 신들조차 어리석음을 무찌를 수는 없었다.


분노와 증오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무지는 지식보다 확신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무지야말로 필요한 필수품이다.

확신범이 되기 위해서,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편은, 가장 보편적이지 않은 모순의 예시다.


“주 하느님이 말한다. 들을 사람은 듣고, 말 사람은 말게 하여라.”


상식의 형성엔 반드시 불의가 섞여있다.

정의와 불의는 인간의 상실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아마자라시의 <구멍을 파고 있어>가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프로그래머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의 백도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구가 다시 미래로 되돌려 품어안은 거인들은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시간이 없다는 자각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인간이 편견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편견이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상식은 편견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진리조차, 육편처럼 도륙내면 그저 편리함일 뿐이다.


인간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편견이 아니다.

편견을 진리로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사상과 힘을 두려워해야 한다.


두려움은 무력, 그리고 무력함에서 비롯된다.

편견 없는 사람이 가지는 편견, 그것은 바로 진리다.

진리는 서서히, 다가갈 수 있을 뿐 절대 도달할 수 없다.


아르카디아로 향하는 탈출로는

아르카디아에 도달할 수 없다.


도달함이란 바로 정지와 정체, 그리고 부정일 뿐이다.

언젠가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이게 다 인생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한없이 다가가지만 아무리 보내도 절대 닿지 않는 것. 이게 근본이야.”

응용수학이었는지, 전력공학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회로이론이나 통신공학개론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를 만든 근간은 수학과 논리학이다.


자연의 비호를 받는 법칙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곡선은

사람의 근본이자 자연의 근본, 모든 것의 근본이었을까.


이데아, 유토피아, 그리고 아르카디아는 어디에 속한 세계일까.

어쩌면, 지구의 백도어란 바로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인간만 살아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시라.

지구야말로 살아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事物)이란 그렇다.

지구와 태양은 탄생 이래로 우리은하를 스무 바퀴도 넘게 돌았다.


스무 번 남짓 돌아보았을 뿐인데, 판단이 너무 이르다.

우리는 아직 젊다.


아르카디아로 향하는 탈출로는, 아직 공사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메트로폴리스 라이트 시티 메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