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수필
해외에서 컴퓨터공학을 배우는 친구가 있었고, 음악을 만들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다.
컴퓨터를 하는 그 친구는
내 글을 묵묵히, 글자를 받아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 그 친구는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었다.
오로지 음악을 만들고 싶은 친구만이, 내 글을 좋아해주었다.
나는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일시 정지를 누르고 컴퓨터로 글을 썼다.
나는 친구의 음악을 좋아했고, 친구의 졸업논문을 받아들었지만 친구의 글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순문학이란 무엇인지 나도 설명할 수 없는데
그러면서 친구의 글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순수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고전 클래식과 가곡들은 있지만, 순수문학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서 순수함이란 태풍 속에 담긴 바닷물이 있다는 것과 같아서
마치 소년만화 같이 화려한 세션으로, 질주하는 80년대의 고급진 노래 속에 담긴 베이스 라인 같아서
모래밭에 널린 규소로 컴퓨터 메모리를 만드는 우리들은, 이미 만들어진 순수함에 진짜 소중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컬들의 코러스 루프와 기타 리프 안에 든 베이스 라인은 이따끔씩, 쉬는 시간에만 운동장으로 나와 만날 수 있는 친구들 같아서
수십, 수백만의 거금으로 만들어진 헤드폰을 써야만 겨우 들리는 순수함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순수함이란 존재의 유무를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제너 다이오드처럼 역방향 전류에서 동작하도록 설계된 반도체 부품이 작고 연약한 전자회로 전체를 지키는 경호원이듯이
숨은 베이스 라인은 사실 숨어서 노래를 지킨다.
그래도, 드럼 같은 친구가 있으니까.
송전선이란 장 이론 속에 숨은 가이드라인일 뿐이어서
사실은 전류가 아니라 허공으로 에너지가 전달된다.
역으로, 바닷물 속에 태풍이 담겨있다는 것이어서
역방향으로 착각한 순수함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나는 친구의 글을 역방향으로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순수함이란 누군가의 글을 읽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깃들어 있는 것이어서
나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친구와 실없는 토론을 했다.
숨은 순문학은 사실 숨어서 글을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친구가, 내 글을 좋아해주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는 음악은
역방향으로 감아가며 듣는 카세트테이프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풍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운영체제 속에서 문득, 일시 정지를 누르고 저장 버튼의 인터럽트 명령을 수행하는 컴퓨터가 있다는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하는 그 친구와는 달리, 나는 순수함을 역방향으로 착각해서
나는 그와의 우정을 한 번 더 떠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역방향으로 설계된 순수함은,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