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것은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

리추얼스토리-107

by 미키현 The essayer
ChatGPT Image 2026년 3월 22일 오후 07_00_48.png


그동안 저는 불안할수록 더 많이 붙잡아 놓으려고 했습니다. 정보, 사람, 일정, 물건, 기회까지. 유튜브 <나중에 볼 동영상>에 계속 저장은 하면서 보지는 않았고, 만나면 그렇게 즐겁지 않은 데도 혹시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나중에 필요할지 몰라서 물건은 버리지 못했고, 준비되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아 일정을 무리하게 잡았습니다. 그렇게 삶은 점점 단단해지는 대신 무거워지고 버거워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과부하’라고 부릅니다. 뇌는 처리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면 안정이 아니라 처리 불가능한 부담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판단은 흐려지고, 관계가 많아질수록 감정은 얕아지며, 정보가 많아질수록 불안은 커집니다.


문제는 ‘많음’ 그 자체가 아니라, 관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삶이란, 가장 겹겹이 쌓인 갑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무게를 유지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더 많이 챙길수록 더 빨리 지칩니다. 인간관계도, 일정도, 기대도 그렇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선의는 결국 의무가 되고, 의무는 관계를 소모적으로 만듭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풍요는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 필요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덜어냄은 포기가 아니라 재정비입니다. 쉬는 날에도 알림이 울리고, 관계마다 책임이 붙고,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 쌓인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쉬어도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일정, 관계, 정보를 의도적으로 줄인 후 수면 질과 집중력, 감정 안정 상태가 개선된 사례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한 자기에게 한계를 허락하는 사람일수록 회복력과 정서 안정, 지속성이 높습니다.


이제는 더 견디겠다는 다짐보다, 덜어내도 괜찮다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나를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걸 안고 가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과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것은 더 갖는 일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덜어낸 자리에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선택지를 줄이고 나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이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덜어냄이 삶의 방향성을 만드는 과정을 체크리스트와 빈칸 채우기를 통해 함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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