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스토리-112
미국의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의 그 유명한 광고 문구였던 ‘Just do it.’은 다양한 상황에 놓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해라, 뭐든 그냥 시작해 보라는 뜻인데,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작조차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를테면 과거에 고통받던 저 같은 사람 말이죠. 이런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나서 그 속의 찌질한 나를 견디지 못해 시작을 아예 하지 못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잘하고 싶다는 마음부터 앞섭니다. 잘 그려야 하고, 잘 써야 하고, 남보다 나은 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술에서 가장 깊은 몰입은 바로 그런 마음을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잘하려는 태도는 집중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는 자기 평가의 연속입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게 맞는지, 창피한 순간을 피하려면 남보다 조금은 나아야 하는데 지금 내가 어떤지, 부족하지는 않는지, 결과가 괜찮을지 스스로 감시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집에서 혼자 헤드폰 끼고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연주회를 준비할 때 솔직히 좀 괴로웠습니다. 실수하지 않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부담감이 너무 심했습니다. 난타(공을 가볍게 주고받는 몸풀기)만 칠 때는 그저 즐거웠는데 본격적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점수를 내야 하는 게임에 들어가고 나니 스트레스가 오더라고요. 혼자 그림을 그릴 때는 치유되는 기분이다가도, 잘하는 옆 사람을 보고 나면 이유 모를 자괴감이 오기도 했습니다. 일기장에 끼적댈 때는 글이 술술 써지고 자유롭지만 플랫폼에 올리는 순간, 반응이 어떨지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누군가에게 심지어 자기에게 평가받기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잘하려는 순간은 통제의 순간이고 몰입은 통제를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외적 보상(평가·인정)이 강해질수록 내적 동기와 몰입이 약화되는 과잉정당화 효과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술·창작 활동에서 공개 목적이 없을 때 몰입도가 올라가고 결과물을 공유하지 않을 때 지속성이 올라갔습니다. 즉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역할’이 아닌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예술적 리추얼은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을 때 가장 순수한 자기 사랑이 시작됩니다. 오늘 저는 저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시를 흰 종이에 적고 잘게 찢어버리는 리추얼을 하려고 합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그림,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글, 아무도 듣지 않고 혼자 하는 음악 등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