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영광에는 외면하고 자신의 행복을 남의 영혼의 말에 위탁하고 있다니
아! 나의 영혼아! 너는 너 자신을 너무도 학대하는 구나. 머지않아 너 자신에게 정당한 처사를 베풀 시간도 사라지리라. 그런데도 당신은 자신의 영광에는 외면하고 자신의 행복을 남의 영혼의 말에 위탁하고 있다니!
얼마 전, 맥도날드에서 페퍼로니 더블피자버거라는 시즌 한정 메뉴가 출시되었다. 으레 우리는 어떤 것을 새롭게 시도하기 전에 실수와 오류를 줄이고 싶기에,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부터 훑어본다.
나 역시 그랬다. 이 버거를 한 번 먹어볼까 하다가 찾아본 온라인 평가는 좋지 않은 게 몇 개 있었다. 어떤 이는 너무 짜다며,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니 당신의 돈을 아끼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나 맛있다며, 시즌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사 먹겠다고 했다.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들은 마치 헤어져야만 하는 고속도로의 표지판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처음 부정적인 평 몇 개만 보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신기하지만, 온라인에서 몇 개의 비슷한 글을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꼭 내 생각처럼 굳어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내 안에서 피어나는 경험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이 결국 더 컸다. 결국 나는 그 버거를 먹어보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나는 꽤 맛있게 먹어서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먹을 예정이다. 평소 싱겁게 먹는 편인데 누군가처럼 짜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만약 다른 사람의 말만 들었다면, 나는 아마 그 맛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버거 하나를 놓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것은 비단 저녁 식사 메뉴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대에도 현대에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에 갇혀버린다.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누가 들어주어야 할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얻어야만 꼭 행복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나의 작은 성과와 소박한 행복은 과연 보잘것없는 것인가?
남들이 이야기하는 '핫플레이스'에 가서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면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되는 것인가?
그 사진에 '좋아요'가 많이 찍히면 느껴지는 충족감이 과연 나에게 진정한 충족감이었나?
꼭 남들이 인정하는 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집에 살아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향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우리만의 단단한 기준을 가지고 만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무의식과 영혼은 항상 불만족하고 긴장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결핍의 상황으로 내몰아, 어떻게 해도 충만한 영혼이 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와 같다. 끝없는 스트레스를 공급하는 학대 행위에 가깝게 되어 버린다.
이제 우리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나만의 단단한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아야 한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해둔 [엥케이리디온]의 한 구절을 빌려본다.
거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너의 몸이 위탁된다면 너는 화를 낼 것이다. 그런데 너는 너를 욕하는 사람에게 너의 정신을 위탁해 너의 정신이 괴로움과 혼란에 시달리게 내버려 둔다.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