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내 손을 잡아 끄는 아이의 손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달싹거리는 입술 사이로 “어버버…”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이의 엄마는 당황해서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아이는 더욱 힘을 주어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낯선 목적지를 찾다가 길가던 아이 엄마에게 길을 묻던 참이었다. 뜻밖의 상황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어린 시절의 설렘도 사랑이라 할 수 있다면 내 첫사랑은 그 아이였다. 조금만 나가면 논밭이 이어지는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 초등학교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쏘다니느라 얼굴은 빨갛게 트고 누런 콧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다른 남자애들과 달리 아이의 얼굴은 곱디고왔다. 당시 인기 있던 탤런트를 닮은 잘생긴 얼굴에 갈색 머리카락은 늘 단정히 빗어 넘겨져 있었고, 봄가을이면 카라가 달린 셔츠에 꼭 조끼를 받쳐 입었다. 갈색 블레이저의 단추는 꼭꼭 잠겨 있었다.
아이는 늘 조용했다. 내가 아이 주위를 맴돌며 말을 걸어도, 힘없이 떨어뜨리는 연필을 매번 주워 줘도 고맙다라던가 귀찮다는 표현도 없었다. 연필을 쥐여주느라 잡은 손은 표정만큼이나 차갑고 축축했다.
아이는 지금 말로 지적장애아였을 것이다. 아이의 눈은 초점 없이 흐렸고, 무슨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앞이나 뒤, 옆에 앉아 숙제를 써 주고, 대신 받아쓰기를 해 주고, 맥없이 풀리는 손에 자꾸 연필을 쥐여줬다. 선생님이 특별히 그 아일 챙기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아이가 좋아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나는 늘 바가지 머리에 옷도 대충 입고 다녀 여자애로 보일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남자애들이 남자 아니냐고 바지를 벗어 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우악스러운 아이들 속에서 그 아이는 내게 가만히 빛나는 동상 같은 왕자님이었다. 동화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움직일 수 없는 왕자님.
왕자님은 떠나는 날까지도 가만했다. 아이가 전학 가는 가을날 아이의 엄마가 날 밖으로 불러내셨다. 그리고 “고맙다…” 하시며 무너지듯 나를 안고 엉엉 우셨다. 난 아이를 돌봐준 게 아닌데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이상했고, 다 큰 어른이 날 잡고 울만큼 슬프다는 건 너무 슬픈 것 같아 슬펐고, 이제 왕자님을 못 보는 거구나 깨닫게 되어 쓸쓸해졌다. 그 아이가 자주 입고 다니던 갈색 체크무늬 모직 블레이저의 까슬까슬한 올이 노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이의 머리카락 색은 엄마를 닮았던 건가 보다. 처음 보는 그 아이의 엄마도 갈색 머리카락이었다. 보송보송한 화장품 냄새가 고왔고, 쌀쌀한 날씨에 폭 안기니 따뜻했다. 들썩이는 아주머니의 등 뒤로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이었고, 아주머니는 울었고, 나는 쓸쓸함에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그 아이와 헤어졌다.
“00아 손 놔! 엄마가 놓으라고 하잖아.” 엄마가 목소리를 높여도 아이는 여전히 내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 아이처럼 차갑고 축축한 손이다.
“가시는 곳이랑 같은 데 가는 중이라 애가 같이 가자고 자꾸 잡네요. 죄송해요.” 엄마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애쓰는 중이다.
“괜찮아요. 같이 가도 돼요. 손 잡고 가도 되고요…” 나는 주춤주춤 아이 손을 고쳐 잡았다. 아이는 그제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손바닥이 마주하니 손의 차가운 기운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때처럼 노란 가을 햇살 속을 아이와 나는 한 덩어리가 되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