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고 물건 연대기
중고가게를 단골처럼 다닌 것은 삼성동 코엑스의 상사 전시관에 위치한 아자플리마켓에서부터였다.
(지금은 없다! 이것은 약 십몇 년 전 이야기 :0)
전시관 입구가 위치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코엑스 1층의 넓은 홀 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유리벽으로 구획 지어진 작은 사무실? 전시관? 들이 있다. 아자플리마켓을 소개한 어느 옛 기사를 보니 이 구역을 '상사 전시관'이라고 하나 보다. 보통은 아주 한적하고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어쩌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홍대 부근에서 오랜 시간 지낼 땐 허름한 빈티지 가게나 특이한 소품 가게, 각종 핸드메이드 가판대 등이 일상이었는데 타지(?)를 떠돌다 보니 이런 가게가 그리웠나 보다. 특히 모든 것이 큼직큼직한 삼성동에, 그것도 거대한 전시장 위에, 뜻밖의 자그마한 빈티지 가게라니. 어쨌든 알게 된 뒤론 점심 후 소화도 시킬 겸 어슬렁슬렁 들르곤 했다.
노란 조명을 켜 둔 그 가게의 입구엔 소품, 그릇, 가방, 손수건, 인형 등등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고 가운데와 양쪽 행거에는 옷도 걸려 있었다. 주로 일본에서 공수해 오는 것 같았는데, 손수건, 양말 등은 새 제품인 듯했다. 넉넉잡아 열 다섯 걸음이면 가운데 행거를 중심으로 가게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여서 가능한 천천히 둘러봐야 했다. 나만 이곳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거의 두어 명의 손님이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은 소곤거림이 가게를 채웠다.
그곳에서 난 아담한 가죽 버킷백과 버버리 손수건과 선물용으로 작은 소품들을 종종 샀다. 버킷백은 십 년인가를 쓰고 헐어서 버렸지만 묵은 가죽 냄새는 아직도 기억난다. 오래된 가죽에서는 어떻게 그런 상콤한 향이 나는 걸까? 버버리 손수건은 아직도 짱짱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손수건을 꺼낼 때마다 그 가게의 노란 조명이, 작은 인형들의 귀여움과 낡은 패브릭의 포근함이, 오늘은 어떤 제품이 새로 들어와 있을까 하던 설렘과 호기심의 기억이 딸려 올라온다.
호텔과 백화점과 컨벤션 센터들이 우뚝한 그곳, 너무 넓어 길을 잃기 십상인 코엑스 상가, 그 위에 세련된 것들을 가득 펼쳐 놓고 이것이 앞으로의 트렌드요! 하는 광활한 전시홀 위에, 그 가게는 마치 <소공녀 세라>가 살던 민친 여학교의 다락방과 같았다. 작고, 낡은 것 투성이었지만 인도인 집사가 화려한 테이블보 위에 차려준 만찬처럼 요술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의 짧은 점심시간, 그 작은 가게 하나에서 중고 물건의 즐거움을 소소히 느끼던 나는 그 후 다양한 중고거래의 나라로 가게 되었다. 가라지 세일의 천국, 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