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고 물건 연대기
쇼핑도 사회화의 한 갈래라고, 난 미국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신혼살림을 미국에서 시작하며 100% 한국인인 나를, 미국인으로 전혀 사회화되지 않은 나를 '쇼핑을 통해' 자각했다. (언어를 통해서는 백 배로 자각)
무엇을(옷을, 가구를, 그릇을, 세제를, 휴지를) 어디서(백화점? 그로서리? 전문샵? 할인샵? 달러샵?) 어떻게(현금, 수표, 카드, 쿠폰) 사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쇼핑의 모든 것이 낯선 가운데, 가장 낯선 것은 바로 가라지 세일이었다. 자기 집 앞에 자기가 쓰던 물건을 펼쳐놓고 판다니, 한국에선 도대체 있을 수가 없는 그런 모습 아닌가. 그런데 뭐 예상했던 대로 나는 가라지 세일을 너~~~ 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garage sale - (사람이 자기 집 차고에서 하는) 중고 물품 세일_네이버 사전
첫 가라지 세일은 우연히 만났다. 남편이 천으로 된 동전 지갑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아마존 사이트엔 적당한 게 없었다. 간단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천 파는 곳은 또 어딘지? 그러다가 동네를 지나가던 중 차고 앞에 물건을 펼쳐두고 앉은 부부를 보게 되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가라지 세일이군! 드디어 만났어!'하고 호기심에 차를 세웠다. 어색하게 "Hello~"하고 물건을 살피니 유아용품이 대부분인데 앙증맞은 리바이스 청바지가 눈에 띄었다. 바로 이거야! 이걸 요렇게 조렇게 자르면 되겠다. 동전 지갑용으로 딱이구만. "How much is it?" 하자 대답이 쏟아졌다. "어머, 너 아이가 몇 살이니? 이거 너무 귀엽지? 근데 우리 아이는 이거 얼마 입지도 못했어. 애들이 쑥쑥 크잖아. 완전 새 거라구. 1불만 줘." 앞의 영어는 대충(과연?) 알아들었는데 뒤의 1불만 귀에 쏙 들어왔다. 지폐 한 장에 기분 좋은 미소를 나누고 가져온 작은 청바지를 오리고 꿰매고 리바이스 라벨까지 살려 동전 지갑을 완성했다.
그 뒤로 가라지 세일 팻말이 보이면 홀린 듯 따라갔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나서는 더 자유로워졌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중고거래 사이트인 크레이그리스트에서 정보를 찾고, 온라인 지도에 주소를 확인하고, 경로를 프린트해 나섰다. 나중엔 가라지 세일 스폿과 맵이 합해진 온라인 서비스 사이트를 검색해 찾아내어 홀로 환호했다. 주로 토요일 오전에 가라지 세일이 열렸는데 주 5일 독방 육아(독박 육아 아닌 독방 육아!)를 하다가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나서기에도 딱 좋은 때였다. 30달러 정도를 손에 들고 낯선 동네로 미지의 물건을 만나러 가는 혼자만의 드라이브는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목적이 없어 즐겁고 그러다가 괜찮은 물건을 사면 또 즐겁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도 괜찮다. 가지각색의 집과 푸른 잔디, 큰 나무들 사이로 드라이브하고 온 거니까.
그렇게 다니다 보니 가라지 세일을 가려내는 나름의 눈도 생겼다. 세일을 알리며 업로드해 놓은 사진만 봐도 대충 물건이 많을지 적을지, 괜찮을지 허접할지 가늠이 되었다. 동네에 따라 물건도 달랐다. 가장 좋은 기회는 같은 동네의 여러 집이 한꺼번에 하는 가라지 세일이었다. 아마 동네 커뮤니티에서 정해서 하는 듯한데, 약간은 축제 같은 분위기에 주인들도 흥이 올라 말 몇 마디만 나눠도 절반 가격으로 물건을 팔곤 했다. 어눌한 영어에도 친절한 스몰 톡이 오고 갔다. 어린아이가 팻말을 쓴 듯한 곳은 메인 판매자가 그야말로 그 집의 어린아이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럼 물건은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냥 아이가 우겨서 하는 '체험형' 세일이니까.
가라지 세일에 주로 나오는 품목도 정의되었다.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이다. 한때 유용했던 것, 주로 아이들 옷과 신발, 장난감, 한바탕 옷장 정리 후에 골라졌을 옷, 충동구매로 들여왔을 자질구레한 장식 소품들이 마당에 펼쳐진다. 나의 공략 포인트는 유아용품이어서 폴로, 짐보리 등의 옷과 예쁜 수를 놓은 아가용 손뜨개 담요 등이 그들의 마당에서 우리 작은 아파트로 옮겨졌다. 고급 주택가에선 직접 재단해 만든 듯한 스커트와 고급 브랜드의 원피스,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품도 구할 수 있었다.
일도 공부도 아닌 동반자 자격, 소위 시체 비자인 주부로서, 미국에서 "나도 여기 살아 있소."라고 알리는 사회적 행위는 대부분이 쇼핑이었다. (사실 한국의 주부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자꾸 소비에 의미을 덧입히게 되는 걸까) 그렇게 쇼핑도 사회화의 일부라 한다면 가라지 세일은 가장 재미난 사회화의 장소였다. 쇼핑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미국의 사회화를 겪었달까. 평범한 미국인들이 마당에 내어놓는 살림의 일부를 우리 집에 들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미국엔 가라지 세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당에서 집 안으로 성큼 들어간 에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은 또 새로운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