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탈탈, Estate Sale

나의 중고물건 연대기

by 미키

에스테잇 세일은 집을 비우기 위해 모든 물건을 모조리! 깡그리! 탈탈 털어 파는 것이다.

가구, 식기, 옷, 현관 앞 매트까지 모두! 심지어 집도 함께 파는 경우도 있단다. 주인의 사망이나 실버타운 입주로 기존 집을 정리하는 경우가 흔하고, 타지로 이주하며 세간을 단출하게 만들려는 경우도 있는 듯. 미국은 땅덩이도 크고, 기후도, 집의 구조도 천차만별이니 우리나라와는 이사의 모양새도 다를 것이다.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것들이 에스테잇 세일의 물건들이다.

가라지 세일의 물건들이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 '내가 이걸 왜 샀지', '그동안 잘 썼네.'라는 마음으로 내놓아지는 한때, 한 시절의 물건이라면 에스테잇 세일의 물건들은 인생 통째로의 느낌이다. 공간부터가 다르다. 가라지 세일은 창고나 마당이 매대이지만 에스테잇 세일은 집 그 자체다. 식기는 조리대에, 옷은 옷장에 걸린 그대로, 가구도 본래 자리에서 딱지를 붙이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러니 집 구경은 덤이다.


내가 가 본 에스테잇 세일은 주로 주택, 그것도 주인이 오랫동안 거주한 고풍스러운 주택에서 열린 것들이라 가지각색의 주택 내부 구조며 인테리어, 생활상을 구경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예스러운 꽃무늬 벽지를 지나 나뭇결이 살아있는 계단을 올라 삐걱대는 마룻바닥을 밟으면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 가정집 배경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에 놓인,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을 물건들은 더 정겹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금속 테두리의 안경테들, 주인과 수없이 많은 여행을 다녔을 낡은 가죽 슈트케이스들, 생애 동안의 모든 유행을 보여주는 듯한 옷장 속 옷들, 주인이 고심해 고르고 걸었을, 이제는 빛바랜 커튼과 테이블보.


나는 열린 옷장 속에서 손뜨개 꽃망울이 달린 할머니풍 니트 카디건과 갈색 니트 원피스를 골라 몇 년간 매우 잘 입었다. 노리다케 찻잔과 접시, 진짜 실버웨어가 잔뜩 쌓인 부엌에서는 손잡이가 나무인 일본산 얇은 빵칼과 이제는 흔치 않은 Made in USA의 튼튼한 포테이토 매셔를 샀고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어느 집에서는 탄탄한 면직물의 침대보와 테이블보, 커튼 세트를 싹 쟁여오기도 했다. 그게 그 집의 마지막 물건이었다. 커튼과 테이블보를 벗겨내 낡은 창틀과 탁자가 드러나니 마치 내가 뼈다귀를 뒤적이는 하이에나가 된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가구들도 많았지만 집이 좁아 사지 못할 땐 한숨 나오게 아쉬웠다. 튼튼하고 질 좋은, 반지르르한 목재 가구들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꼭 팔려서 영생하길 바랄 정도로 탐이 났다. 가구 브랜드나 명품에 대해 잘 몰라서 차라리 다행이다. 알았다면 아쉬움이 더욱 깊었을 테니.


브런치 에스테잇 세일 그림.jpg 할머니 옷장, 할머니 선반을 뒤지는 건 왜 그리 재미있을까. 어떤 분이셨을까.


에스테잇 세일은 주로 업자들이 맡아하는 것 같다. 물건마다 꼼꼼하게 가격표가 붙어 있고 시계나 귀금속 등 고가품은 집 입구에 마련한 계산대 옆에 따로 진열한다. 판매도 전문 업자가 하지만 구매자 중에도 전문 앤티크 업자들이 섞여 있다. 에스테잇 세일에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물건을 일찍 차지하기 위해 공고된 오픈 시간 이전부터 줄을 길게 서기도 하고 판매처 측에서 번호표를 나눠주기도 한단다. 사실 에스테잇 세일에 처음 눈을 뜬 것도 이 줄 때문이었다. 아니, 이 한적한 동네에 저게 무슨 줄이지? 하고는 스르르 이끌려 간 덕이다. 그 후론 스스로 찾아가 줄을 섰다. 담소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과 어딘가 딱딱한 업자들 사이에서 혼자 줄을 서 있자면 살짝 외롭기도 했다. 집안에 들어가면 구경하느라 스르륵 휘발될 가벼운 외로움이었다.


정작 외로운 중고 쇼핑은 따로 있었다. 언제 가도 조용히 가라앉은 공기 속에 가만히 자리한 물건들 사이를 거닐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앤티크 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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