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고물건 연대기
이십 대 때, 번화가에 함께 간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난다.
"야, 넌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 뭘 그렇게 열심히 봐?"
그 말을 듣기 전까진 내가 주변을 그렇게 열심히 구경하는 줄 몰랐다. 친구가 귀엽다는 듯이 말해서 그런지, 구경꾼인 나의 모습이 촌뜨기 같다기보다는 코를 연신 킁킁대며 산책하는 강아지나 창 밖을 홀린 듯 구경하는 고양이처럼 기억에 남았다. 뭐 그렇게까지 귀엽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런 두리번두리번 뭐지뭐지 버릇은 미국에서도 여전했고, 아니 새로운 환경에서 더 자극되어서 덕분에 주변에서 '와, 이런 덴 어떻게 알았어?' 하는 재미난 곳도 여럿 발견했다. 그중엔 '너 때문에 왔는데 이게 뭐야!'란 말을 들을 법한 곳도 더러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앤티크 몰은 남편이 발견해 주었다. 가라지 세일에 눈이 반짝이는 걸 보더니 "한인마트 근처에 앤티크 몰 간판을 봤어."라는 거다.
운전 중에 목적지 외엔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 웬일인가. 일 없고 친구 없는 이곳에 마음 붙일 곳을 어떻게든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인가. 선녀가 도망갈까 봐 아이 셋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숨기는 나무꾼 같은 심정인 건가? 하긴, 당시 한국의 시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친구 많이 사귀고,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지내렴."이란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게 기억난다. 주변에서 보고 들으셨는지, F4 시체비자의 우울감을 충분히 예상하신 우려였다. 실제로도 나는 간간히 상실감, 고립감, 박탈감, 언어와 함께 급강하된 지적능력에 대한 자괴감이 울룩불룩 튀어나오곤 했다. 아마 주변 주부들도 비슷했으리라. 다들 어떻게 그 시기를 견뎠는가. 나는 임신과 출산이 변곡점이 되어 그 짧은 체류 시기를 채워 버렸다. 흠, 선녀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왜 자꾸 이런 기억이 끌어올려지는가 하면, 앤티크 몰에서의 산책은 그 시기에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랬구나 싶다. 그땐 그냥 좋았다.
우리나라 마트 한 층 넓이만큼 큰 매장 안에 작은 부스들이 죽 늘어서 있고, 각각을 개인이 임대해 꾸미는 앤티크 몰은 부스 수만큼이나 다양한 물건이 모여 있다. 어떤 부스는 섬세한 은식기와 도자기들이 하얀 레이스 위에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부스는 모피코트가 잔뜩 걸려 있기도 하다. 코카콜라 액자부터 녹슨 시계, 50년은 더 되었을 것 같은 낡은 장난감이 대충 쌓여 있는 부스도 있고, 최근 열풍인 미드 센추리 가구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진열되어 있기도 한 곳. 1평쯤 되는 부스들이 나름 멋을 부려, 켜켜이 시간의 숲을 이루는 그곳에서는 열 걸음마다 시대와 장소를 휙휙 뛰어넘는 묘한 타임 워프를 할 수 있었다. 워낙 나의 살림과 동떨어진 물건들이어서인지 그다지 구매욕이 일지 않아 더욱 편하다. 만져도 되는 박물관 같달까. 다만 보석이나 시계 등의 고가품은 열쇠가 필요한 유리 진열장 안에 진열되어 있다.
출입구 앞 계산대에 켜놓은 라디오 소리만 멀리서 들리는 조용한 앤티크 몰 안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마음속 먼지들이 가라앉았다. 그저 물건을 보며 예쁘다, 예쁘다 했다. 가격표와 선전문구의 성가신 유혹 속에서 카트를 끌어야 하는 그로서리나 쇼핑몰과는 너무나 다른 속도감이다. 마지막 부스까지 오는 게 아쉬워 일부러 느릿느릿 걷기도 했다.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혼자라면 더 좋았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 바깥이 타는 듯 뜨거운 날도, 매섭게 추운 날도, 항상 서늘한 곳. 나는 바닷속 유물을 탐사하는 다이버가 된 것처럼 조용하고 시간이 꽉 찬 그곳에 잠수하듯 들어갔다.
가끔은 실용적인 물건도 샀다. 자잘한 꽃무늬가 있는 철제 쟁반은 미국에서 내가 직접 고른 첫 번째 식기로, 아직도 나만의 추억을 담당하고 있다. 튼튼한 스페인산 가죽 웨스턴 부츠도 적당한 가격에 사서 용감히 신고 다녔다. 지난해, 친척 방문을 겸한 미국 여행에 신혼 때 살던 그곳을 들렀다. 미국에서 꼭 하고 싶은 일정 중 하나였다. 남편과 아이가 갈 놀이공원 근처의 앤티크 몰을 검색해 둘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기로 했다. 십여 년이 지났지만 몰의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두 시간 여 동안 내가 만끽한 건 뭐였을까? 시간, 추억, 옛 것, 그리운 쓸쓸함, 막연한 기대감, 멈춘 시간들.
남편과 아이가 앤티크 몰로 날 찾아와 깜짝 놀랐다. 전화가 안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날 찾았고, 아이는 신기한 게 많다며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오래된 마블 만화잡지를 보고 환호했다. 마침 10불로 균일가 세일 중이라 스파이더맨과 판타스틱 포가 표지인 만화 잡지 몇 권을 사들고 나왔다. 지금도 아이 책장에 소중히 꽂혀 있다. 내가 사 온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곳에서 유영하듯 거닌 시간은 한참 동안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다음에도 언젠가 가게 된다면, 앤티크 몰을 위한 시간은 꼭 만들어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