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고물건 연대기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정해지자, 착잡한 가운데 '드디어 나도 에스테잇 세일'을 할 수 있겠군'이란 짜잘한 설렘이 생겼다. 자잘에 찌질을 섞어 짜잘이라 하자. 찌질의 이유는, 뭐, 유학생 살림이란 게 에스테잇 세일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참으로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살림의 갯수는 늘었지만 누군가 돈 내고 사갈 만한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기에 다양한 경로의 증여, 혹은 판매에 착수했다. 유홀 트럭을 빌려 산골짜기 어느 집에까지 가서 사온 세탁기와 건조기는 어느 새로운 유학생 부부에게 저렴하게 넘겼다. 소파와 서랍장, 식탁과 의자, 대나무 자리와 진공 냄비, 각종 양념류 등 지인들이 하나둘 떠나며 내게 넘긴 엄청난 갯수의 물건들은 다시 주변으로 흩어져 적당한 집에 자리를 잡았다. 나름 값을 들여 산 매트리스와 청소기, 자전거는 크레이그리스트에 저렴하게 올려 주인을 착착 찾아갔다.
특히 다이슨 청소기는 예약 없이 빨리 오는 순서대로 팔겠다고 글을 게시해서 그런지, 몇 시간만에 헐레벌떡 뛰어온 젊은 아빠가 사갔다. 부인이 "당장 가서 사와!"라며 주소를 적어줬는지 자기가 뭘 사러 온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빠를 따라온 꼬마가 너무 귀엽다며 남편은 덤으로 럭비공을 증정했다. 시골 어느 집에서 구해온 아기침대와 기저귀 교환대는 셋째를 기다리는 예쁜 부인에게 팔려갔다. 선물받은 크립 베딩 세트도 포함해 순산을 기원하며 보냈다.
덩치 큰 물건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가지고 어느 주말, 에스테잇 세일을 열었다. 크레이그 리스트와 여러 군데 게시글을 올리긴 했지만 성업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나도 구매자일 땐 아파트 세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니. 작은 집, 아파트 등은 물건 수가 적어서 우연을 기대하는 중고물건 구매자들에겐 매력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두근두근했다. 구매자로서는 많이 다녀봤지만 판매자는 처음이다. 어떤 사람이 올까, 어떤 물건이 눈에 들까. 물어오면 대답은 어떻게 하나. 가격은 적당할까? 흥정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데. 많이 왔으면 좋겠다! 나름 가격표를 붙이고, 몇 안 남은 가구 위에 소품들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지인이며 아파트 주민, 근처 동네 사람들이 뜨문뜨문 들렀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이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물건을 팔려니까 갑자기 귀가 트이고 혀가 풀렸다. 그때에서야 생각했다. 아, 언어를 배우려면 일을 해야해! 말문을 트고 나자 나는 어느 부인과 대학 시절 전공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물건은 많이 팔지 못했지만 방문객들과의 대화는 신선한 소득이었다. 곧 떠나야 한다는 게 더 아쉬워졌다. 각종 중고 세일을 통해 재밌게 쇼핑했던 물건들을 두고 가는 것도 아쉬웠지만, 더이상 그런 세일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더욱 안타까웠다. 한국에 가면 에스테잇 세일도, 가라지 세일도, 앤틱몰도 없겠지!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고, 시장은 변했다. 나는 지금도 아주 즐겁게 중고쇼핑을 즐기고 있다. 벼룩시장과 아름다운가게, 게다가 중고거래 앱이 생긴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