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01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 19는 봄을 점령하고 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겨울에는 마스크를 쓰는 게 어렵지 않았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도 크게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봄이 되고 코로나 19에 당연히 아랑곳없이 꽃이 찬란히 피니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게, 이 꽃을 함께 즐길 약속을 잡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 정도 가지고 안타까움이라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가끔 나가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로 야외 공원은 북적북적,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고 나 또한 타인이 부담스러운 부딪힘이 생겨났다.
사람이 없는 때를 골라, 종종 밤에 산책을 나섰다. 원래도 봄밤을 좋아한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휘발되는 꽃향기가 밤에는 산 아래로, 나무 아래로 그윽하게 고이기 때문이다. 낮의 봄은 눈으로 즐긴다면, 밤의 봄은 코로 즐긴달까. 향기를 좇아 동네를 벗어나 산 아래 소공원으로, 짧은 산길을 지나 사람 없는 밤의 공원으로 걸었다.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낮보다는 훨씬 적으니 서로 안심이다. 향기를 맡으려 마스크를 내려도 누군가를 불안하게 할 염려가 없다. 마스크를 내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봄밤의 향기는 여름으로 향하며 라일락에서 아카시아로, 찔레꽃으로 바뀌었다. 사교계에 처음 데뷔한 젊은이처럼 수줍고도 발랄한 향기가 라일락이라면, 아카시아는 고풍스럽고 묵직한 레이스 스톨을 걸친 당당한 노부인 같다. 나무의 모습부터가 다르다.
봄밤의 행복을 나누고 싶어서 종종 친구들을 불러낸다. 이 봄밤은 짧다고. 곧 모기가 나오기 전에 어서 밖에서 만나야 한다고. 더 더워지면 무리라고 꼬신다. 이제는 서로의 집에 가기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술집에서 만나기도 어려운 시기인데 바깥이라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탄천의 잔디밭에 핑크 캐릭터 매트를 깔고 서로의 집에서 가져온 땅콩과 치즈, 포도와 체리를 꺼냈다. 어쩐 일로 친구 집에 입성했다는 모엣 샹동에 크리스털 잔까지 캐릭터 매트 위에 납시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집에서도 못 꺼내던 크리스털 잔을 이제는 공원에 가져올 정도까지 되었으니, 우리 아이들 참 많이 컸구나 싶다. 우리는 그만큼 늙었겠고. 다음엔 캐릭터 매트 대신 심플한 체크무늬 매트를 챙길 정도로 여유가 생길 수도 있겠다.
고립된 것 같던 낮을 봄밤에서 위로받았다.
아직 보내고 싶지 않은데 이제 여름의 시작이다. 그래도 열대야만 아니라면, 모기를 참을 수 있다면 여름밤도 제법 괜찮지 않을까.
아직은 꽃향기가 남아 있는 이때,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면 밤을 걸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