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OK, 김장은 NO
동네 친구가 브런치를 하자며 친한 엄마들을 집에 초대했다. 그전부터 "나 김장하면 보쌈해 줄게~"라고 했던 친구라 생굴을 사들고 룰루랄라 방문했다. 솜씨 좋은 친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수육을 빨간 보쌈용 김치와 노란 배춧속, 김치 양념, 새우젓과 함께 아름답게 차려냈다.
시댁에 가서 시누이들과 새벽 5시 반부터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려 백 포기나 담갔다는 김장 김치는 아삭하고 달큰하니 맛있었다. 절인 배추를 몇 번이나 옮기고 속을 채우느라 김장을 끝내고선 시댁인데도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는 김장 무용담을 듣다 보니 과연 지금 이 자리의 우리들도 시어머니 나이가 되면 김장을 할까? 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김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시댁이나 친정에서 하니까 도우러 간 경우가 대부분이고 직접 나서서 '주체적으로' 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이나 될까? 거의 없다.
"우리도 나중에 김장을 하게 될까?"라고 질문하자 다섯 명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 사 먹지 않을까?" "그러게. 물이나 반찬처럼 옛날엔 생각도 못 했던 것들도 지금은 다 사 먹고 있는 것처럼... 사 먹을 것 같은데?" "사 먹는 게 훨씬 싸잖아요. 맛도 있고. 00 브랜드 맛있더라고요." "마당도 없는데 김장을 어떻게 하겠어."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두 포기 김치는 시도해 볼 수 있다 해도, 김장은 네버! 절대! 안 할 것 같다. 예전에 파김치를 한 번 담가보겠다고 두 단, 총 4kg을 사서 도전했다가 우리집이 왜 김장을 할 수 없는지 뼛속 깊이 깨달은 적이 있기 때문에 잘 안다.
첫째, 부엌이 좁다. 아파트 부엌을 왜 이리 좁게 만들었는지, 우리집이 작은 평수인 이유도 있겠지만, 대형 평수도 부엌이 좁다는 건 주부라면 공감할 것이다. 파 두 단도 씻고 다듬어 절여 둘 곳이 마땅치 않은데 김장은 언감생심?
둘째, 설비가 없다. 첫째 이유와 어찌 보면 같은데, 집이 좁으니 각종 조리도구도 작다. 김치를 절일 큰 대야? 그런 건 평소에 어디다 걸어두는데? 배추를 버무릴 큰 대야? 그건 또 어디다 보관하고? 어떤 기사를 보니 4인 가족 평균 김장 양은 23포기 정도라는데, 흠. 그거 절이려면 목욕 욕조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외국 살이 때 세 집의 김장을 함께 해보겠다고 욕조에서 절였다.) 절임배추도 팔고, 접어 보관할 수 있는 김장용 매트도 있더만 최종적으로 그 김치를 보관할 설비도 부족하다. 김치냉장고를 들이려면 최소 1평 정도는 공간이 더 필요하다. 네이버 부동산을 찾아보니 이 지역 평당 가격은 2700만 원이라고 나온다.
마지막, 개인적으로 체력이 없다. 일도 해 본 사람이 잘하는데, 평소 김치를 안 담그던 사람이 김장이라고 덤비면 몸 상하고 비싼 재료 넣은 김장도 망하지 않을까? 내 몸 상하는 것도 무섭지만 23포기의 배추와 양념이 망하는 건 너무 아깝다! 예전에 망친 깍두기는 딱 무 한 개라서 그나마 속이 덜 쓰렸지...
최근 어떤 기사를 보니, "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판 김치 구매 비중은 2014년 8%에서 불과 5년 만인 올해 19%로 크게 높아져 10가구 중 2가구는 김치를 사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키즈팜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891358&memberNo=46565320)"고 한다. 그 2가구 중 하나가 우리집일 것이다. 10kg 김치를 사서는 두 달 정도 먹는다. 가끔은 엄마나 시어머니, 친구들에게 고맙게 받기도 한다. 직접 담근 김치를 준다는 건 정말 "찐사랑"이다! 사는 김치도 나쁘지 않지만 직접 담근 김치는 정성 때문인지 역시 더 맛있다. 그만큼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그냥 같이 공동구매해 사 먹자고 시어머니를 꼬셔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같이 김장해 볼까?"한 적도 있었다. (이건 내가 파 두 단을 사기 전의 이야기이다....) 그때 친구들의 싸늘한 눈초리는 잊히지 않는다. "야, 그냥 사 먹어."라는 대답이 돌아왔었지.
그러니 한 두 포기 배추를 사다가 김치, 혹은 겉절이 정도는 만든다 해도 그 이상의 김장은 꿈꾸지 않는 걸로.
김치 공장들이여, 우리집 김장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길. 맛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