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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키 Jul 26. 2019

먹어치우는 입

내 입은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사건은 1+1 아이스바 행사 상품을 고르면서 시작되었다.


거룩한 일요일 이건만 나는 교회의 예배와 점심, 성경공부에 4시간 반을 바치고 나면 기분이 수직 낙하하며 당도 함께 떨어지는 날라리 신자다. 빨리 당을 보충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아 교회를 나서자마자 아래 편의점에 아이스바를 사러 갔다. 그런데 집 근처 마트에서는 400원 하는 아이스바가 편의점에서는 거의 1000원이다. 마침 1+1 하는 행사가 있어 그중 먹고 싶은 아이스바를 골라 찾아봤는데 재고가 없다. 다른 걸 정가대로 사자니 아깝다. 고작 600원 차이지만 주부에게는 2배  넘는 차이로 환산된다. 1+1 아닌 걸 사긴 좀 아까운데 하며 구시렁대는 날 보고 남편이 문제의 발언을 했다.


"뭘 이런 걸로 아끼려고 해? 집에 식재료나 버리지 말지."


쓱. 냉동고 문을 닫고 집에 가자 했다.




난 지난주에 물러진 오이 반토막을 버렸고, 골마지가 낀 열무김치를 버렸다. 냉장고에서 일주일을 버틴 햄 한 덩어리도 버렸다. 반찬통에 1/3 정도 남아있던, 쉰내가 나기 시작한 시금치나물도 버렸다. 버리지 않으려면 그래, 남편 말대로 잘 챙겨 먹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아침식사로 오이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 대신 핫케이크를 주문한 입 짧은 아들이? 시금치 두 단을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기를 짜고 양념해서 일주일 내내 점심 저녁 시금치나물을 먹은 내가? 먹다 먹다 너무 시어 씻어 볶아 먹어도 맛이 나지 않는 것을 그래도 참고 먹어보려 한 내가 또?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며 밖에서 먹고 온 당신, 오늘은 내가 모처럼 밖에서 약속이 있으니 집에서 반찬이랑 밥이랑 챙겨 먹으라고 한 나에게 "아 귀찮아. 그냥 라면 끓여먹을래." 한 당신, 퇴근길에 카톡으로 '오늘 저녁은 뭐야?'라는 질문에 '밥이랑 밑반찬'이라고 하면 '메인은 없어?'라고 하는 당신! 당신이 '챙겨' 먹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식재료를 버릴 때 마음이 편한 주부는 없다. 오늘은 어디 마트의 무엇이 싸더라. 뭐가 맛있더라 하는 이야기는 주부들의 주요 대화 내용 중 하나다. 최고의 효율로 식탁 운영을 하기 위해 주부들은 시간을 들이거나, 돈을 들이거나, 발품을 들이거나, 이 모든 것을 들여 식재료를 사고, 긴 시간 조리를 하거나 짧은 시간 반조리를 한다. 반찬을 사다 먹는 것에서조차 반찬통에 옮겨놓는 것 모두 수고다.

하지만 식탁 상황이 주부의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돌발변수는 '남편'이다. 주변의 주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애들은 아무거나 줘도 잘 먹어. 그런데 남편은 매번 '메인'을 달래."라는 한탄이다. 오이와 피망 썰어 놓고, 스팸 한 조각 굽고, 반찬 가게에서 사 온 깻잎절임과 멸치볶음을 덜어 놓고, 아침에 먹었던 된장국 데워 내도 애들은 잘 먹는데 남편들은 불고기나 제육볶음, 생선구이 등 식당에 메뉴 이름으로 걸릴만한 무언가가 없으면 '차린 게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점심을 그렇게 먹어온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메인을 새로 만들어 내다 보면 원래 있던 반찬과 국은 순서가 밀리고, 냉장고에 잠자게 된다. 가족이 같이 처리해 주지 않으면 주부의 홀로 점심, '차린 게 없는' 밥상으로 오르기 십상이다. '먹어치운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마저도 질리거나 상해서 버리게 되면 누가 가장 마음이 불편할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주부이다!


주부인 친구가 '차린 게 없네' 하며 차려준 밥상. 주부인 우리는 "말도 안돼!"하며 환호했다.



주부(나)의 흔한 점심 혼밥. 냉동밥에 남은 반찬을 담아.


과거, 시어머니와 밥상을 차리고 정리할 때 가장 불편한 말은 이거였다.


"이거 애매하게 남았네. 얘, 나랑 같이 먹어 치워 버리자."


존경해 마지않는 시어머니이지만, 그 순간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먹어 치운다는 말에 내 입이, 위장이 마치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탐식에 대식가이고, 어머님의 음식은 늘 맛있었기에 거절 없이 싹싹 맛있게 먹지만 '치운다'는 단어는 목에 늘 걸렸다. 난 맛있게 먹고 싶다. 치우기 위해 먹고 싶진 않다. 하지만 비용과 수고와 시간을 들인 음식을 버리는 건 주부에겐 정말 쉽지 않다.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이용객의 숫자와 식사의 횟수가 정해진 급식소의 영양사가 아니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급식소 역시 잔반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당신이 저녁을 규칙적으로 집에 와 먹는 게 아니라면, 남는 음식이 없게 하라는 건 내가 다 처리하라는 소리이며 그 말은 꼭 내 입이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고 말이다.


나와 달리 일요일을 맞아 '경건한' 남편은 미안하다며 재빨리 수긍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스바 대신 카페에서 빙수를 사주겠다는 갸륵한 제안까지 덧붙였다. 1+1 아닌 아이스바를 사는 것은 아까운데 빙수에겐 관대해지는 내 마음이라니. 그래 빙수는 절대 '먹어 치울' 수 없지. 맛있게 먹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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