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나무 사이로 숨바꼭질해 봤니?
자, 배경은 이래.
우리는 이곳에서 원 없이 놀았어.
보통은 동네에서 놀다가 집에서 "밥 먹어라~" 하면 저녁 먹으러 들어가는 걸로 놀이가 끝이잖아? 그런데 우리는 저녁을 먹고 다시 나와 놀았지. 겨울이 아닌 계절엔 늘 그랬던 것 같아. 갈림길에 있는 가로등 아래로 모두 모여 숨바꼭질을 했어. 어두운 밤, 침침한 주황색 가로등 불빛 속에서 하는 숨바꼭질은 더 스릴 있지. 단지 가장 안쪽은 왠지 어둑하고 습기 찬 느낌이라 낮에도 잘 가지 않았는데, 그만큼 술래가 잘 오지 않는 곳이어서 숨어있기 그만이었어. 하지만 공포심도 그만큼 커졌지. 술래보다 앞서 귀신이 날 잡으러 올 것만 같았거든.
낮에도 단지 안을 쏘다니며 놀았어. 나뭇가지와 덤불을 모아 공터의 담벼락 옆에 비밀 기지를 만들고는 못쓰는 냄비며 그릇을 가져다 놓기도 했지. 그 좁은 곳에 동네 꼬마, 언니, 오빠들 모두 서로 들어가겠다고 신경전을 벌였어. 정작 들어가서는 너무 좁아서 그저 앉아있는 게 전부였는데도 왜 재미있었을까?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 엎어져 입안을 모래피떡으로 만들고, 시소를 타다가 옆에서 야구하는 오빠들의 공에 맞아 울며 집에 가기도 했어. 그때 그넷줄은 쇠사슬이어서 연한 팔뚝살이 녹슨 사슬 사이에 꼬집히기도 엄청 꼬집혔지. 그 냄새는 또 어떻고....
놀다가 목이 마르면 아무 집에나 가서 물을 마셨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니 근처에 마트도 하나 없고, 시장도 한참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던 것 같은데 엄마들은 장을 어떻게 보셨을까? 장을 자주 보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집에 콜라를 박스째로 사두셨던 것이 기억나. 공터 너머에는 고구마 밭이랑 멧돼지 농장이 있었던 것 같아. 언니, 오빠들은 가끔 고구마나 무를 캐서 그냥 먹었는데 나도 따라 해 봤지만 앞니로 솜씨 좋게 껍질 벗기는 게 잘 안되더라. 언젠가는 멧돼지 농장에 놀러 갔는데 산에서 멧돼지가... 아니, 사슴 농장이었는데 멧돼지가 내려와서? 아니다. 멧돼지 농장이었는데 삵이 내려와서? 아무튼 산에서 뭔가가 내려와서 멧돼지인지 사슴인지를 잡아먹었댔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우리는 모두 단지의 철문을 지나 강둑을 걸어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어. 버스 노선의 첫 정류장이자 마지막 정류장이었던 터라 우리는 항상 맨 뒷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뒷자리는 팡팡 튀는 놀이기구처럼 재밌었지. 심할 땐 머리가 버스 천장에 부딪히기도 했어. 수업이 끝나면 엄마가 목에 걸어주었던 작은 가죽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학교 앞 분식집에서 핫도그를 사 먹었어. 50원인가 했던 핫도그는 소시지는 새끼손가락 반절 크기만큼도 안 들어 있었지만 무한정 퍼먹을 수 있는 짜디짠 미역국이 맛있었지. 남은 거스름돈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엉덩이를 튕기며 다 함께 단지로 돌아왔고.
언젠가는 내가 혼자 버스를 타러 갔던 것 같아. 버스정류장에 처음 보는 아저씨가 있었어. 하얗고 몸에 붙는 양복 차림에 머리는 잭슨 파이브처럼 아프로 스타일을 하고 까만 선글라스를 낀. 아마 그 당시에는 패셔니스타였을 듯한. 그런 아저씨가 시골 버스정류장에 나랑 같이 서 있다가 말을 몇 마디 걸더니, 글쎄... 바로 옆 개울에서 작은 물고기를 홱 낚아채서는 날름 먹었어! 여름 햇빛을 받아 은색 비늘이 반짝거리던 작은 물고기가 아저씨 입으로 사라졌어!! 정말 뜨악한 순간이었지...
뜨악한 순간은 또 한 번 있었어. 우리는 겨울이면 포대자루로 썰매를 타고, 여름엔 물놀이를 하러 단지 밖 강둑엘 가끔 나갔어. 그다지 깊지 않은 강이었지만 비가 오면 엄청나게 불어났어. 그렇게 물이 콸콸 불어났을 땐 강가를 바가지로 뜨기만 해도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했지. 거친 돌이 많아서 물놀이하기엔 좋지 않아서 자주 가진 않았는데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이 다 같이 물놀이를 하겠다고 나갔어. 우리 외엔 아무도 없는 강에서 웬 아저씨가 혼자 물놀이를 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변태 아저씨였던 거야 ㅜ ㅜ 어린 우리한테 자신의 XX를 노출하고 자랑했어. 정신건강을 위해 그 X의 대사는 옮기지 않겠어. 저 아저씬 뭐지 하고 있던 우리, 일고여덟 명의 아이들-키 큰 오빠들부터 키 작은 꼬마들까지-은 순간 얼었다가 후다닥 동네 안으로 도망갔어. 아마 어른들한테 바로 말했던 것 같아. 그다음부턴 본 적이 없으니까. 아니면 그 후 우리가 강에 안 갔던 것인지도. 그때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난 책에 남자 그림이 나올 때마다 바지 지퍼 위에 번데기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게 생각나. 번데기!! 아마 요즘 같았으면 누군가 상담센터에 데려갔을지도 몰라. 그런 X 때문에 강둑 풍경에 오점이 생겨 버렸어.
오점은 반짝이는 돌로 치워야겠어. 강둑은 포장되지 않은 데다가 아마도 사택을 만들면서 새로 낸 길이었는지 거친 돌이 많았어. 거기서 넘어지면 진짜 아픈데. 돌에 금가루 같은 게 조금씩 박혀 있어서 반짝이는 게 참 예뻤지. 아라비안 나이트며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황금을 발견하거나 사금을 채취하는 부분에서 강둑의 돌을 떠올리곤 우리 동네에도 황금이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놀이터 흙바닥에서 놀 땐 작은 돌멩이로 집터를 만들고는 흙으로 덮어 미니 유적지를 만들었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보는 유적지를 따라서. 나중에 누군가 발견하면 500년 전의 놀이 흔적을 알아줄지도 모르잖아?
한 번은 동네의 나무가 반짝인 날도 있었어.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 공장에서 사택이랑 공장이 이어지는 문가의 키 큰 나무에 트리를 꾸며주었거든. 보통 땐 오돌토돌한 옥색 열매 같은 게 달려 있던 나무였는데 전구랑 얇은 은박지 같은 장신구를 달아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더라고. 사실 나무 스스로도 어색해 보였던 트리보다는 그걸 바라보던 얼굴들이 더 기억나. 평소엔 공장 쪽 사람들을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트리에 불을 밝히던 그날 밤, 전구 불빛이 닿았던 웃는 얼굴들. 동네 꼬마들과 섞여 있던 공장 언니들의 웃는 얼굴이.
아! 그러고 보니 엄마가 어디서 콜라를 샀는지 알 것 같아. 공장 안에 매점이 있었어! 우리도 아주 가끔 가서 아이스크림 같은 걸 사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 왠지는 모르지만 자주 가진 않았어. 아무래도 공(공장)과 사(사택)는 구분해야 하니까?
나는 전주 대한방직 사택에 그런 추억이 있어.
5년 전쯤이던가, 일 때문에 전주에 간 적이 있어. 전주에 오래 사셨다는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 말미에 그 자리에 살았었다 하니 "아직도 있어요, 그곳!" 하시는 거야. 일이 끝나고 냉큼 가보았어. 가슴이 너무너무 두근거렸어. 세상에... 정말 그대로 있었어. 낮은 담도, 낮은 집들도, 앞뒤 뜰도. 모두 낡은 담, 낡은 집, 낡은 뜰이 되어 있었지만 말이야. 아쉽게도 2월이어서 모두 회갈색이었고 내 머릿속에서 여전히 총천연색으로 재생되는 연분홍 꽃들과 초록 잎들은 없었어. 그래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 그러나 곧 개발될 거라고 덧붙여 주셔서, 돌아 나오는 길이 더 아쉬웠지만 그렇게 본 것도 감사했지.
며칠 전 읽은 책 <희망 대신 욕망>(김원영, 푸른숲)에서 이런 인용문을 보았어.
'인생' 전부라기엔 좀 부족하지만, 적어도 나의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인내할 수 있게 해 준 힘의 원천은 이곳이었어. (그래서 난 내 아들에게 과연 어떤 풍경을 주고 있는 것인가 가끔 살펴보게 돼.) 내게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만들어준 이곳이 난 정말 고마워.
이곳이 개발된다고 기사가 나긴 했는데, 기사를 더 찾아보니 불확실한 모양이야. 하지만 누가 손을 대든, 곧 어떻게든 바뀌겠지. 내가 흙 속에 묻어둔 유적지가 흩어지듯, 담도, 집도, 뜰도, 나무도 모두 모두 흩어지겠지. 괜찮아. 이제 기억을 활자로 바꿔놨으니, 나는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또 누군가가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겠지. 나랑은 매우 매우 다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도 소중한 힘의 원천이 되는 곳이 되어주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