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질 기억을 글자로 남길게
먼저, 이 글은 아주 지루할 수 있다는 걸 알아둬.
그리고 정리도 잘 안 되어있을 거야.
진부하고 고루해 보일 거야.
어쩔 수 없어. 낡은 기억 속에서 급히 끄집어내
일단 글자로 쌓아두는 거거든.
마치 불난 박물관에서 낡은 유물들을 어떻게든
피신시켜야 하는 것처럼.
전시 중인 게 아니라 소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유물들 말이지.
이건 오랫동안 기억 저편에 있던 풍경들이야.
한때 수없이 끄집어내어 보다가 희미해진.
그래서 글자로 보관해 두지 않으면 스러질.
있잖아.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한 기사가 눈에 꽂혔어. 전주에 430미터의 타워가 생긴다더라.
자광이라는 건설사가 총 2조 5천억 원을 들여 옛 대한방직 부지에 430m의 타워와 350실 규모의 호텔, 60층 높이의 3천 세대 규모 공동주택, 백화점·영화관을 포함한 26만여㎡의 복합쇼핑몰 등을 건설하기 위해 계약금 198억 원에 이어 잔금 1782억 원까지 최종 납부했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79&aid=0003210993
http://www.areyo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912
저 높고 비싼 숫자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네 글자, '대한방직'이 내 고향이었어.
정확히는 마음의 고향.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라는 노래 있잖아?
가사 중 '산골'만 '사택'으로 바꾸면 내 노래가 돼.
초등학교 입학 전, 난 전주시 효자동에 있는 대한방직 사택으로 이사했어. 내 머리 속에 최초로 '장기 기억'을 심어 놓은 곳이 이곳이야. 사택 단지에 들어가려면 옆에 작은 강이 흐르는 포장되지 않은 강둑길을 100미터쯤 걸어 가야 해. 철문을 통과하면 길 왼쪽에는 대문이긴 한데 키낮은 대문이 달린 집들이 자리잡고 있어. 오른쪽으로는 벚나무들이 있고. 길은 단지 가운데서 둘로 나뉘는데 그곳 화단에는 배나무, 복숭아나무가 있었어.
제일 큰 집 한 채, 그 다음으로 큰 집이 두 채, 그리고 좀더 작은 집들이 8채. 집 사이에는 날랜 아이들이 도전하기 딱 좋은 높이로 시멘트 담이 세워져 있었어. 그래서 매번 우린 담을 넘어 다녔어. 그러다가 어떤 언니 바지 가랑이가 쫙 찢어져서 엄마가 꿰매 주었던 것이 생각나.
집들마다 모두 앞뜰과 뒷뜰이 있었는데, 대문 옆의 뒷뜰은 다들 텃밭으로 사용했어. 우리집은 옥수수랑 상추, 딸기 같은 걸 심었어. 엄마가 흙에 구멍을 파면 내가 옥수수알을 세 알씩 떨어뜨렸어. 그게 쑥쑥 자라서 옥수수가 달리는 게 정말 신기했어. 딸기는 제대로 익은 걸 먹어본 기억이 없어. 발그레한 기색이 돌자마자 동네 아이들이랑 족족 따먹어버렸거든. 하지만 옆집 앵두는 우리가 한사코 따먹는데도 계속 맺혀서 설익었을 때부터 터질 듯 농익은 것까지 계속 먹었던 것 같아. 여주도 심었는데 맛은 좀 이상했어. 모양도 이상하긴 하지.
봄이면 벚꽃이 주르르 피고, 그 다음엔 배꽃이랑 복숭아꽃이 폈어. 우리는 꽃잎을 수북히 모아다가 뿌리며 놀았어. 나무 아래 화단에는 잔디꽃이랑 사루비아 꽃이 깔려 있어서 꽃을 떼어 꿀을 쪽쪽 빨아먹었고. 갈림길 옆에 있는 배와 복숭아는 동네가 함께 따고 함께 나눠 먹었어. 엄마들이 다같이 잼을 만들었던 적도 있었어. 늦은 봄의 노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엄마들이 휘젓는 솥에서 시고 단 냄새가 동네를 가득 채웠어.
각집마다 앞뜰의 정원수는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우리가 직접 심은 것도 아니지만 난 우리 집 정원에 풍성하게 피는 흰 철쭉이랑 키 큰 나무가 자랑스러웠어. 동네에서 제일 키가 컸거든. 미루나무였을까? 플라타너스? 메타세콰이어?
아주아주 작은 풀도 날 기쁘게 해줬어. 겨울 끄트머리쯤, 겨우내 집뒤 놀이터 옆이랑 공터를 두텁게 덮었던 마른 풀을 뒤집으면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옥색 쑥들이 새끼 손가락보다 작게 돋아나 있거든? 밑둥을 잘라내면 정말 진한 향이 나. 집에서 아무렇게나 챙겨온 바구니가 가득 찰 때까지 질리지도 않고 친구들과 계속 캤지. 그 기억 때문에 지금도 시판 쑥을 잘 못 사겠어. 솜털이 보송하고 밑둥이 통통한 쑥이 그리워.
겨울에 누렇게 죽는 공터의 마른 풀은 여름에면 엄청 무성하게 자라서 어린 우리 정강이까지 올라올 정도였어. 그 풀을 양 갈래로 그러잡아 묶어서 덫을 만들곤 했어. 거길 지나다니는 사람이 뭐 많았겠어? 우리들만 지나다니니 당연히 아무도 걸려 넘어지지 않아서 만들어 놓은 우리끼리 걸리는 척 놀이를 하며 풀밭에 나동그라지곤 했지. 푹신푹신해서 넘어진다 해도 다칠 게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도 풀밭만 보면 자꾸 드러눕고 구르고 싶어지는데 이때 기억 때문인 걸까?
토끼를 키우는 집도 두어 집 있었어. 우리집도 그 중 하나였어. 시든 상추며 잡풀을 뜯어다 주면 오물오물 먹는 게 진짜 귀여웠어. 제일 좋아하는 풀은 질갱이여서 열심히 뜯어다 주었어. 멀리 갈 필요도 없었지. 지천에 질갱이였으니까. 토끼는 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소릴 들어서 한 번도 물을 주지 않았거든? (그런데 동요 가사 속에 "물만 먹고 가지요~"가 있잖아. 나중에 그걸 들으니 갑자기 토끼한테 무척 미안해졌어... 물 없이도 잘 지내긴 했지만. 정말 잘 지냈던 게 아닐지도) 아무튼, 어느날은 우리집 토끼가 어떻게 했는지 철망을 뜯고 가출했어. 동네를 수색해 보니 다른 집 토끼장 앞에 가 있는 거 있지. 어른들은 번식기라 토끼가 짝을 만나러 간 거라고 했는데 소리도 내지 않는 토끼가 어떻게 다른 토끼를 찾아냈는지 진짜 신기하지 않아? 그 밤중에, 10채의 집을 모두 들락날락하며 결국 찾아낸 걸까?
옆집에서 키우던 닭도 생각나. 갓 낳은 날달걀을 톡 까서 먹어봤는데 맛은 그냥 그랬던 것 같아. 뜨끈했던 온기만 기억나네. 톡 깨진 건 달걀 말고 제비알도 있었어. 우리집 마당 쪽으로 난 외벽 등에 제비가 집을 지었거든. 근데 그 알이 궁금하다고 언니랑 동네 오빠 언니들 몇이서 장대로 집을 쑤셔서는 제비알을 깨뜨린 거야. 그 약한 껍질 사이로 흘러나온 작고 작은 노른자가 아직도 생생해... 놀부에게 복수한 제비가 우리집에도 복수를 하러 올까봐 난 정말 무서웠어. 근데 말야. 닭의 알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선 제비 알은 깨뜨린 게 무섭다니. 이야기의 힘이란 신기하지.
그리고.. 뱀도, 지네도, 땅강아지도 많았어. 한창 달리는 자전거 바퀴 앞으로 빨갛고 알록달록한 뱀이 샤샤샥 지나가는 건 예사였지. 어느날은 두꺼운 뱀이 나와서 엄마랑 다른 아저씨랑 잡았어. 그 뱀은 큰 유리병에 담겨 술로 절여졌어.
쑥을 캐러 대문 밖으로 달려나가다가 족제비랑 부딪힌 적도 있었어. 그쪽이나 나나 급히 달리다 부딪혀서 놀라서 둘다 그만 멈춰버렸어. 족제비가 앞 발을 내 발등에 올리고 서로 바라보았던 그 0.1초의 순간이 기억나. 족제비는 재빨리 달아나버렸는데... 멀리 가진 못했어. 놀라서 담이 쳐진 우리집 정원으로 도망가 버렸거든. 그래서... 그 족제비도 엄마랑 동네 아저씨가 잡았어... 그리고 박제로 만들어 버렸어. 오랫동안 우리집에 진열되어 있었다? 눈알은 나랑 마주쳤던 그 까맣고 반짝반짝한 눈이 아니었어. 그건 그냥 미이라 같은 거였지... 어른들은 아이들이 걱정되어 잡으셨던 거겠지? 동네 아이들은 어렸고, 서로 문도 항시 열어두고 살았으니까....
다음엔 뭘 하고 놀았는지 써두려고 해.
머리 한 구석을 청소한 것 같아.
뇌내 기억용량이 조금 늘어났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