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키 Jul 09. 2020

아이 키우는 여자로서

두려움을 느낀다

딸 키우기 힘들고 무서운 세상이란 말이 관용어가 될 만큼 이 세상은 진짜 딸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다. 
아니, 아이 키우기 무서운 나라이다.
이번 손정우 미국 인도 불허 판결로 SNS가 들끓고 내 머리도, 마음도 들끓었다. 눈에도 열기가 올라서 화면을 더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몇 분 동안 스마트폰 액정을 더 들여다보고 있었던 건 '사이버 감옥'이란 걸 봐 버렸기 때문이다. 성범죄자와 사이버 성폭력 가해자의 얼굴과 신상정보, 범죄명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눈에 익은 동네 거주자가 보여 눌러보았다가 읽기도 끔찍한 가해 내용에 경악하고, 피해자는 아직 성인이 안 되었을 것 같은데 가해자는 벌써 감옥에서 나와 주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무섬이 확 일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이걸 알까? 그럼 절대 아이를 혼자 내보내지 못할 거야. 불안해서 어떡해.


가슴이 답답해져서 남편에게 

"누가 우리 00이 확 잡아채가서 나쁜 짓 하면 어떡하지? 목에 칼 들이대고 따라와! 하면 어떡해... 

00이는 겁나서 그냥 따라가겠지? 너무 무서워.."
하니 별소릴 다한다는 말투로

"우리 00은 그런 데 가지도 않아~"라는 거다.
"그런 데라니? 어딜 말하는 거야? 피해자가 어딜 가서 당하는 게 아니라고. 가해자가 와서 가해하는 거지."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당시 스크롤한 범행 내용은 '피해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어디 위험한 델 안 가면 당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 편한 소리가 어쩜 저렇게 쉽게 나올까.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 아빠와 엄마의 차이일까? 투덜대니 남편은 "그러니까 그런 거 그만 봐!"란다. 안 본다고 불안함이 없어지니? 본다고 세상이 달라지냐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만..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들어주는 남편은 유독 이럴 땐 저런 말을 한다. 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보고 내가 분노할 때도 그랬지... "그러니까 좀 좋은 드라마 보라"고.. 참나.


그런 드라마를 보고, 이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불안한 것이 아니다. 엄마들은 모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당해온 것이 있고, 내가 당할 수도 있는 걸 알기에 나보다 작고 약한 아이들이 처할 수만 가지 경우를 상상한다.

난 만 12살인 아들이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 특히 가게 안에 있는 화장실이 아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상가 안의 화장실이 특히나 그렇다. 그래서 아들이 화장실을 갈 때면 밖에서 큰소리로 '여기 밖에 엄마 있다.'를 잔소리로 포장해 시전 한다. "손은 깨끗이 씻었지? 대충 씻으면 안 돼~ 비누는 있어? 응 엄마 기다릴게. 천천히 하고 나와~" 등 ' 이 아이의 보호자가 밖에 있다'를 어필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동네 엄마들 모두 그러고 있단다. 모든 상황을 이렇게 커버할 수는 없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기대할 기댈 곳은 나의 힘, 아이의 자기 방어력, 타인의 관심과 연대를 차례차례 넘어 종국에는 공권력, 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이 참 고매하다. 인격, 품성, 학식, 재질이 높고 빼어난 고매함이라는 단어가 법관의 옷을 입고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우리 00은 그런 데 가지도 않아요!"라고. 너무 높고 멀어서 이런 작고 작은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걸까. 판결을 내리는 법관뿐만이 아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두려웠다. 누구나 자신의 법을 두르고 "법대로 한 건데 뭐가 잘못이냐!" "그럼 떼법을 따르라는 거냐." "맨날 가해자 취급받는 남자는 뭐 마음이 편한 줄 아냐."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이것저것 다 무섭다. 그런 때가 많다. 나도 남편처럼 마음 편한 소리나 할 수 있음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뽕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