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생존만 하면 무슨 재미야!"
아들이 이렇게 말하며 울부짖다시피 했을 때, 나는 비장미와 약간의 감동을 느꼈다.
이건 마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는 마태복음 4장 4절의 말씀 같았달까.
(날라리 신자라 그래요, 전혀 달라;)
얼마 전 SNS에서 보고 저장해 두었던 글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중
아들이 건너고 있는 어려운 구간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인 크래프트 맵이었다. 코로나 19를 맞아 아들도 친구들과 온라인 만남을 만들었다. 마인크래프트를 함께 하기로 한 거다. 스카이프로 동시통화를 하며 게임을 하는 걸 듣다 보니 아이들마다 다른 성향과 취향이 느껴졌다. 어떤 친구는 채집과 채굴을 좋아하고, 어떤 친구는 자꾸 사라지며 모험을 즐긴다. 아들은 건축 파였다. 지형과 어울리는 집을 짓고 꾸미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의 집과 자신의 집, 가게들을 조화롭게 꾸며 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아들 마음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건축과 인테리어보다는 채굴을 하고 적을 퇴치하고 새로운 땅을 찾는 걸 더 좋아했다. 이걸 마인크래프트에서는 '생존'이라고 하나 보다. 서로의 차이에 대해 투덜대는 아이를 "사람마다 다 다른 거지. 생존이 더 재밌는 사람도 있는 거잖아."라고 다독이니 아들이 외친 것이다. "생존만 하면 무슨 재미야!!"라고.
살아있음 혹은 살아남음. 더 좁게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까지 살아남는 것. survival에서 subsistence까지 걸쳐지는 말. 아들이 외친 생존이란 단어가 귀에 오래 남아 맴돌았다. 감염의 위험을 걱정하고, 감염 우려에 대해 무책임한 자로 혹시라도 손가락질당할까 봐 일상을 근근이 보내는 요즘과 글자가 겹쳐졌다. 전시도, 공연도, 도서관도 조심스러워진 지가 오래다. 여행의 흥분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떠는 소박한 즐거움도 눌러야 한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다. 코로나 블루의 원인 중엔 '재미없음'도 있지 않을까. 너무 재미가 없었던 나머지 어제는 갑자기 슬픈 영화가 보고 싶었더랬다. 무거운 구름에 눌린 공기처럼, 머리 속도 눅눅했던 날이었다. 슬픈 영화를 보며 펑펑 울면, 물기를 짜내면, 보송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만큼 슬픈 일은 없었지만 감정이 저 위로 솟구치지 못한다면 바닥이라도 쳐보고 싶었던 이상한 욕구였다. 감정의 저울을 평행으로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걸까. 저울을 휘청이게 해 보고 싶었다. 안전하고 재미있게.
눈물샘을 터뜨릴 만한 영화를 떠올리지 못한 나는 뭘 했냐면, 사진첩을 열고 김보희 작가의 작품을 다시 봤다. 방탄 RM도 봤다는, 평소보다 10배 넘는 관람객이 와서 미술관 측도 놀랐다는, 줄을 오래 서야 해서 그늘 텐트까지 쳐야 했다는 그 전시다. 전시회의 인기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미술관 큐레이터는 "코로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예술이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맞다. 나도 그랬다. 원래도 김보희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지만 코로나 19 속에서 열린 전시는 더 간절했다. 다행히 사람이 붐비기 전에 간 덕에 아들과 천천히 그림을 즐길 수 있었다. 조용한 전시장에서 화폭에 담긴 바다와 하늘에 풍덩 빠졌다가 나왔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습기까지 느껴지는 숲 속을 눈으로 걸었다.
코로나 19라서, 코로나 19라도, 이렇게 반짝이는 것들이 있어야 이 시절을 지나갈 수 있으니까.
그래 아들아, 생존만 하면 무슨 재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