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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키 Mar 14. 2019

짜장 하나 짬뽕 하나

위장아 나대지 마

  남편이 잔다. 

육각형 얼굴을 소파 팔걸이에 뉘이고 새근새근 잔다. 추운지 담요를 턱 끝까지 올려 덮고 잘도 잔다. 

‘흥! 아주 잘 자는구만……’ 

나는 담요를 당겨 남편의 발치로 내려놓았다. 

‘어 그래. 어디 잘 자봐라.’

생일 다음날, 차가운 겨울 아침이었다.


그래.. 아침 햇빛이나 덮고 자... 


  이틀 전 그러니까 내 생일 전날, 별것도 아닌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아이 초등학교 도서관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끊임없이 쌓이는 책 정리를 하고 있는 중에 고소한 짜장 냄새가 빈 배를 자극했다. 
  ‘아… 애들 오늘 급식 짜장인가 보네. 짜장면 먹고 싶다. 집에 가서 짜장면 시켜 먹을까? 근데 봉황각은 한 그릇만은 배달 안 해 주지… 가기는 너무 멀고… 아, 배고파.’ 하며 집에 돌아와선 급히 김과 김치에 찬밥을 뚝딱하고 하교한 아이 뒤치다꺼리로 오후를 보냈다. 아이를 재우고 원고 마감에 매달려 있는 새 시곗바늘이 12시 00분을 가리켰고 그렇게 생일을 맞이했다. 바로 옆의 남편은 늦은 퇴근 후 또 컴퓨터를 켜고 일하는 중이다. 남편의 판판한 등이 갑자기 얄미워졌다. 


“이봐, 뭐 없어?” 

“어? 어, 생일이네~ 생일 축하해~"

“뭐지. 그 흥이라곤 하나도 없는 축하는?”

“어~~~ 미안해~~~ 대신 내가 주말에 이벤트 해 줄게.”
 “나 주말도 일해야 해. 오늘 일찍 오지? 맛난 저녁이나 사줘.”

“어떡하지? 나 회식 있어...”

“맨날 회사에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는 사람들끼리 무슨 회식을 그렇게 자주 하냐. 

가족이랑 밥 먹는 게 더 힘드네. 뭐 먹는데?”

“삼겹살.”

“우 씨… 삼겹살 두 줄만 챙겨서 좀 일찍 와. 생일 선물로 회사 삼겹살 받아줄게.”


  농담으로 넘어가는 척했지만 서운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남편에게 기대한 게 하나 있다면 아들에게 내 생일 챙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한 달 전부터 몇 번씩이나 꼭 생일 카드를 만들게 하라고, 가능하면 같이 선물도 골라보라고 말했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아들 자신이 선물과 축하를 받는 만큼 주변 사람도 챙기길 바랐다. 그래서 시댁과 친정 식구들, 그리고 남편 생일 때마다 적어도 생일 카드는 꼭 그리라고 아들을 시키는데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남편은 물론 아들도 아무 생각이 없는 눈치다.


 역시나 아침이 되자 남편은 “아들! 엄마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꼭 말해라!”라는 말을 멍석 깔듯 던져 놓고 허겁지겁 출근했다. 아들 역시 널브러진 멍석 같은 말투로 “엄마 생일이야? 그럼 우리 오늘 케이크 먹어?”라고 말한 게 끝이었다. 케이크는 무슨. 근사한 저녁도, 카드 한 장도, 그리고 남편도 없이 평범한 하루가 흐르고 자정이 되었다. 없는 것 중엔 남편의 전화도 있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전화 한 통 없다. 화가 차올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디야?”

“어~ 여기~ 아직도 회식이 안 끝났어.”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걸 보니 술을 꽤 마신 상태다. 

“오빠 너무하네. 그래도 아내 생일인데 저녁은 같이 못 먹어도 좀 일찍 와야 하는 거 아냐?”

“다 내 아랫사람들이라 가기가 좀 그래…”
“그럼 더 와야지!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겠어?”

“그게 그러니꽈울라꽐라우@$@%$#^%&&****…”

전화를 꺼 버리곤 씩씩대며 잠을 청했다. 눈물이 절로 났다. 

‘아내 생일날 집에 오지도 않고. 꽐라 되도록 술 마시고.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도 안 하고! 진짜 용서 못해!’ 


 다음날 일어나 보니 남편은 한기가 가득한 거실 소파에서 담요 하나를 덮고 노숙자처럼 자고 있다. 

“엄마, 아빠 왜 여기서 자?”

“안 씻은 사람은 방에서 못 자거든. 옷도 안 갈아입었잖아.” 

“아빠 더러워?”

“어. 아빠 무지 더러워.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고 너는 학교 가.”

끄응 소리를 돌아누우며 남편은 “나 반차 냈으니까 이따 11시에 깨워줘….”란다. 
   내가 깨워줄 것 같아? 아주 푸~욱 자. 그리고 난 돌아오는 당신 생일날 똑같이 해 줄 거야. 밤 약속 만들어서 엉망진창으로 취해 돌아올 거야. 아니 그런데 당신 생일 반년 넘게 남았지. 그때 되면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를 게 분명하네. 그래, 부모님이라면 껌벅하니까 얼마 안 남은 시어머님 생신을 보이콧해버려야겠어. 시아버지 생신도. 이제 당신이 다 알아서 해. 그럼 뭔가 깨닫겠지. 마음 굳게 먹고 냉전을 해야겠어. 맨날 화를 빨리 풀어버리니까 날 쉽게 보는 거야. 진짜 안 깨워. 지각을 하든 말든!


분노를 곱씹으며 복수의 플랜을 짜고 각오를 다잡았다. 그러는 새 출근과 등교로 소란하던 동네의 소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아침 햇살은 점점 방향을 바꾸었다. 남편은 추운지 뒤척이다가 발치에 내려가 있던 담요를 떨어뜨렸다. 나는 책상에 앉아 아직 끝내지 못한 원고를 써 내려갔다.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렸다. 11시다. 갑자기 기억 속의 짜장 냄새가 다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 집에 사람이 하나 더 있네? 

배달, 배달을 시킬 수 있어!!


“오빠! 일어나! 11시야! 우리 짜장 먹자! 오빤 해장으로 짬뽕 좋지?”


아. 늘 내 뇌보다 빠른 위장아, 그리고 뇌보다 위장의 명령에 충실한 이놈의 혓바닥아!!! 이렇게 남편은 중국집 배달로 위기를 넘기는구나. 일단 먹자! 먹고 생각하자고. 

“봉황각이죠? 여기 짜장 하나, 짬뽕 하나 배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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