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기쁘게 맞이한 학부모님들, 함께 축배를!
"다음 주는 우리 집에 변화가 생길 거야."
"뭔데." 사과를 우물거리며 아이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바로... 네 개학이지! 우하하하하!"
내 입으로 말해놓고 내가 신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얏호! 드디어! 아들의 두 달에 걸친 방학이 끝났습니다! 학교에 갑니다~!!!"
두 손을 쭉쭉 뻗고 발을 굴러가며 춤을 추는 나를 아들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엄마 너무하는 거 아냐? 난 정말 슬프다고. 나한테는 맨날 상황 파악하고 말하라며. 나는 이렇게 슬픈데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녀석, 이제 좀 컸네? 얼마 전만 해도 약이 오르거나 기분이 나빠지면 삐쳐서는 말을 아예 안 하거나 꽥 소리만 지르곤 했는데 요즘 자기감정을 제대로 말하는 때가 잦아졌다.
"아이고... 그러네. 그래 그럼 같이 슬퍼해 줘야지... 이러언.. ... 어쩌나아~~~ 방학~~~이이 끝나았~네에~~~~~~사흐을~뒤면~ 하악교에~ 가야하네~~~~~~~어찌하알꼬~~~~~~우리~~~~~아들~~"
미안하지만 감정이 1도 숨겨지지 않는 판소리 흉내를 내어 아들을 더욱 놀려버렸다. 삐친 척을 하려고 애쓰던 아이는 그만 숨이 넘어갈 듯 웃기 시작했다.
"크흑..흑.. 엄마... 웃기지 말란 말이야... 난 정말 슬프.. 다고..."
내가 슬퍼하는 표정으로 판소리 연기를 이어가자 아들은 자지러지게 웃다 못해 의자에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이 웃겨서 함께 한바탕 웃어버렸다.
나도 아들의 새 학기에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나도 네가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같은 반 아이들은 어떨는지 불안한데 그 공간에 발을 들여놓을 너는 어떻겠니. 분명 두려울 게다. 트러블도 생길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대체로 그렇다지만 아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말해주지 않고 물어보면 대답의 99%는 "몰라."다. 그럴 때마다 엄마로서 신뢰를 못 주는 것인가 싶어 죄책감이 들었다. 아들은 마른 체격에 힘이 약한 아이라 걱정도 컸다
그런데 이번 개학은, 미안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자유시간이 드디어 도래했다는 해방감이 불안보다 앞섰다. 학교가 보수 공사를 하느라 유난히 길었던 두 달의 방학 기간 동안 아들은 집에서 놀고 공부하고 놀다가 공부하며 뒹굴었다. 나는 때 되면 밥을 해 먹이고, 공부하라고, 허리를 세우고 앉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아들이 10분마다 쪼르르 달려와서 재미있게 본 책 속 장면, 영화 캐릭터의 시시껄렁한 정보, 레고 놀잇감 이야기를 해대는 걸 영혼 없이 맞장구를 쳐주면서 재택 업무를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이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드디어 해방이다.
또 하나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은 아들의 애정 표현이다. 왠지 모르지만 몇 달 전부터 아들은 애정 표현이 늘었다. 더 어렸을 때도 하지 않던 뽀뽀며 포옹을 나와 남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마구 해댄다. 처음엔 너무 낯설어서 어색하기까지 했는데 이젠 '그래 이럴 때도 얼마 안 남았겠지'하고 꼭 끌어안고 맘껏 받고, 주고 있다. 이러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을 때 설사 말은 안 하더라도 엄마와 아빠에게서 나름의 위안은 받는 거겠지?
학교 생활에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불안과 자책이 늘 따라다니는 것일 게다. 다만 이렇게 서로 살을 부비고 말이 통하는 순간이 작은 위로가 되고 믿음을 준다는 걸 요즘에야 느낀다. 완벽한 선생님을 만나는 것, 좋아하는 친구와 한 반이 되는 건 너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함께 있을 때는 되도록 많이 웃자꾸나. 네가 걱정된다는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말이야.
개학을 앞두고 준비물 점검을 하라고 하니 아들은 "뭘 가져가지?" 하며 이것저것 담는다.
"필통에.. 연필 두 자루, 지우개. 엄마 테이프랑 풀 어딨어? "
"모르겠는데~."
"아니 테이프까진 필요 없을 거 같아. 엄마, 사물함에 넣을 물티슈랑 휴지도 가져가야겠다. 어차피 나중에 가져가야 하니까."
"오~ 개학식 날 가방 가벼우니까 먼저 가져가는 거야? 5학년 올라가더니 제법이네~"
"그럼 나도 이제 학교에서 상위계급이라고! 1년만 더 있으면 최고계급이 되지!"
하며 아들은 과장되게 으쓱거렸다. '그래? 그럼 그다음 1년 더 있으면 다시 최하위 계급이 되겠네?'하고 뼈아픈 농담을 하려다가 말았다. 모처럼 의기양양한 때에 찬물을 끼얹지는 말아야지. 네 새 학년을 오직 축복할게. 충실히 경험하고 더 성장하자. 그리고 나는 이제 (여름방학까지) 해방이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