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써서 오래 쓰자. 나.
일 년 정도 쓴 키보드 커버가 우글렁 쭈그렁 낡다 못해
'o' 위치부터 구멍이 났다. 커버를 바꿀 타이밍이다.
노트북을 본 이들은 묻는다.
"아니 키보드가 왜 이래?"
예전 노트북 키보드는 커버를 씌우지 않고 썼는데
자판에 패인 자국이 수두룩했다.
"타이핑을 많이 해서 그래."라고 답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뭘 해도 손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다.
캡틴 마블처럼 지구를 구하는 힘이라면 좋으련만
요 미천한 힘은 노트필기를 하면 아랫장에까지
글자를 투명하게 박아버리는 정도의 힘.
(그걸 보면서 소설 속 살인 현장의 메모지 단서를 떠올리곤 했다.
누군가 내 메모를 찢어간다면 세 장은 더 찢어야 할 거야)
어렸을 때 엄마가 걸레 좀 짜서 방 닦으라고 축축한 걸레를 건네곤 하셨는데
내가 짜면 마른걸레가 되어버려서 엄마가 다시 물에 축여야 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는 설거지를 하다 깨부순 찻잔이 여러 잔.
조심해서 하려 해도 긴장해서 더 손에 힘을 주는 바람에
개수대 벽에 그대로 찻잔을 박아버리곤 했다.
치과에서는 칫솔질할 때 살살하라고 얘기를 들었고,
가끔이긴 하지만 때를 밀고 나면 목 언저리는
늘 빨갛게 자잘한 딱지가 맺히곤 했다. (뭐. 때가 많아서 그랬을 수도)
아이를 트림 시키기 위해 등을 토닥이는데 너무 세게 쳐서
머리가 흔들린 적도 다수.
그렇다고 원체 힘이 세거나 손이 크거나 골격이 우람한 것도 아니다.
성격이 급한 터라 뭘 할라치면 순간적으로 있는 힘, 없는 힘을 끌어모아
원기옥을 만들어 쏟아내는 것이다.
결혼 후 본격적으로 살림을 하기 시작하자 손에
더욱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두부를 썰 때도 무 썰 듯
무를 썰 때는 바위라도 가를 듯 힘을 주니
손은 물론 팔꿈치까지 피로감이 온다.
요리를 두어 가지라도 하고 난 후 밥을 먹을 땐 힘이 없어
왼손으로 어렵사리 먹을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안 써도 될 힘을 쓰는 걸까.
힘을 빼도 두부는 썰리고, 아이는 트림을 더 잘하고,
이러나저러나 접시는 접시이고, 걸레는 걸레인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쓸데없는 힘을 들이는 건
손 하나가 아니다.
일을 하고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일할 때는 에너지의 투입량에 따라 크고 작은 성과의 차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살림과 육아는, 특히 아이를 키운다는 건
과정 과정이 에너지를 빨아먹는 블랙홀과도 같았다.
안 되는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억지로 몸을 불리고,
(결국 실패), 혼합수유를 하겠다고 흔치 않은 젖병을 샅샅이 뒤져 찾아 물리고,
수면 패턴을 잡겠다고, 손가락 빠는 버릇을 고치겠다고, 식습관을 바르게 들이겠다고,
어린이집에 적응을 시키겠다고 때마다 분주하다가 제풀에 지치곤 했다.
어느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어떤 방과 후 수업을 들어야 할지, 어떤 학원을 보낼지
앞뒤 양옆 위아래를 재고, 앞서 걱정하는 건 지금도 그렇다.
속으로 전전긍긍, 안달복달하는 총량과는 관계없이
아이는 그럭저럭 자랐고, 자라고 있다.
그럴수록 쇠잔해지는 건 나뿐인 게 다행이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픈 곳이 늘어가고,
잘 살펴보면 원인은 서두름과 억지스런 힘쓰기인
경우가 많았다. 이대로 방치하면 습관이
몸을 빠르게 소모해 버릴 것이다.
당연히 가족에게도 영향이 간다.
그래서 올해 목표 중 하나가 힘 빼기이다.
사실은 작년도, 재작년도 목표 중에 들어 있었다.
힘을 들일 곳과 줄일 곳을 잘 분별하고
미리 힘을 빼고, 속도를 줄여봐.
나를 아껴써야 오래 쓸 수 있는 거야. 라고 말이다.
+1) 그나마 장점인 것은 이 손의 힘으로 안마 기술이 좋다는 것?
나한테 좋은 건 아니라서 아쉽지만.
+2) [힘 빼기의 기술]이란 책이 있던데 읽어봐야겠다.
+3) 이 글은 힘 빼기의 일환이기도 하다. 넘치는(?) 나의 필'력'을 이 정도로만 쓰기로 한다.
음 흐흐흐... 힘 빼기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