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을 따지는 것 자체를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한 아이는 고양이 분양하는 곳에서 데리고 왔고, 둘째는 지인의 공장의 스트릿 출신 아이들의 2세이다.
첫째 온이를 데리고 올 즈음, 매우 바쁜 일정과 당시 원거리 운전이 미흡했기에 사진으로 선택을 하여 집까지 배송? 받았다.
당시 이제 2개월이 살짝 넘어갈까 말까 하는 귀여운 아기고양이였지만, 분양을 받을 당시 책임분양인지 일반분양인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일반 분양에 비해 책임분양의 경우가 더 저렴했는데, 어떤 아이들이 책임분양이 되는가 물어보니, 일반 분양은 정말 1개월이 채 안된 아이들로, 혹여라도 입양이 되었더라도 어딘가 아프거나 하면 교환이나 반품? 이 가능했고 심지어는 중성화 수술까지 해 준다고 했다. 그에 비해 책임분양은 일반분양이 되지 않아 2개월이 넘어가는 아이들로 교환, 반품이 어렵고 중성화나 예방접종도 분양받는 집사들이 다 책임을 지고 해야 했다.
(아마, 교환 반품이 아니라 다른 단어를 사용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는 당시 돈도 없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고양이를 입양해야 했고, 그렇다고 내가 맡게 된 아이를 교환이나 반품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책임분양이 가능한 아이들의 얼굴 사진을 받았다. 그중 나에게 온 우리 첫째 온이는 그동안 일반 분양이었지만, 이번에 책임분양이 가능하다고 소개받아 선택을 하게 되었다.
어찌나 조그맣고 귀여웠던지~ 당시 고양이는 처음 키워 보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온이처럼 얌전한 고양이라면 얼마든지 몇 마리든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자기도 하고, 잘 먹고, 심지어는 첫날 빼고는 하악질 한번 안 하는 아기 고양이였다.
온이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사뿐사뿐 걷는 모습, 살랑거리는 꼬리, 커가면서는 밖에서 놀러 온 새를 보며 채터링하는 모습까지도 그냥 사랑받기 위해 우리 집에 왔구나 싶었다.
온이 덕분에 우리 집이 생기가 돌았고, 나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할 화재가 다양해져서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귀갓길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리고 4년 후 흑미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대게 2년 정도면 성묘가 된다고 한다. 이제 1년이 넘은 우리 집 둘째 흑미는 덩치는 온이 보다 더 큰 것 같지만 얼굴은 아직 아기티가 난다. 힘도 세고 활달하여 얌전하고 조용한 온이와는 너무나 상반된다.
그야말로 똥꼬 발랄한 흑미는 스트릿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행동을 보면 너른 벌판을 마구 뛰어다니며 나비를 잡고 놀 것만 같은 그런 스타일이지만, 그에 비해 오늘도 귀족 같은 온이는 자신을 위해 마련한 스크레쳐 위에 앉아 조용히 흑미가 노는 장면과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저 귀와 눈만으로 호기심을 표현한다.
(가끔은 흑미와 몸싸움을 할 정도로 활발히 놀기도 합니다만..)
그러다 보니 우리 온이를 부를 때 내 목소리는 아주 다정한 저음이 되어 "온아~", "온이 왕자님~"하고 부르게 된다. 때로는 온이를 부둥켜안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온이도 지긋이 내 눈을 바라보기도 한다.
반면 흑미를 부를 때는 목소리 톤부터 살짝 올라가게 된다. "흑미야! 그러지 말랬지!!!"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아끼는 책을 한 권 두권, 책꽂이에서 떨궈낸다. 이 자식, 내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나쁜 쪽으로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해야 할지... 귀여우니까 참아줘야지.
고양이들에게도 하는 행동에 따라 달리 대하는 나도 양심적으로 미안하게 생각되지만 그러면서도 온이를 보면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어 주고 흑미는 조금 격하게 안아주는 것은 상대적이라고 변명을 한다.
흑미뿐 아니라 온이도 자신만의 생활이 있어서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 여가시간을 즐기는 방법이 다르다. 어느 고양이가 옳은지 그른지는 따질 필요 없이,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리라.
온이는 흑미를 질투하지 않는다. 그저 습식사료가 먹고 싶으면 가만히 나에게 와서 "냐~"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할 뿐이다. "간식주라냥~", "화장실 치워주라냥~", "안아주라냥~"
오늘도 품격 있는 고양이 온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요청한다.
나도 태어나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해 왔다.
외모, 성적, 성격,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 재산.. 그 모든 것을 비교하여 내가 상대보다 더 나아야만 마음에 안정을 찾곤 했다. 어떤 기준으로 내가 상대보다 나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더 멋있어 보이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 어느 것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다. 성적도, 결혼도, 외모도, 재산도, 가족도...
그러다 보니 점점 불행하고 감정기복도 심해져 가고, 의기소침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죽는데 뭐 이리 아등바등 사나... 죽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죽을 수가 없는 나 자신이 비참했다.
그 와중에 나는 소설책에서 내가 갖지 못한 성격, 환경들을 주인공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견디어 나갔고, 에세이, 자기 계발서 등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고양이일지라도 함께 살게 된 집사에게 먹을 것을 당당히 요구하고 영역 내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자유롭게 활보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내가 편안해야 할 장소인 집에서도 불안한 생각만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이 되었다.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
나를 위해 우리 집 아이들처럼 스스로를 귀하여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한다.
아침을 잘 챙겨 먹는다.
헬스를 시작한다.
살을 뺀다.
책을 읽을 시간을 따로 떼어둔다.
일기를 쓴다.
내가 쓴 글을 꾸민다.
예쁜 그릇에 담아 먹는 음식은 내가 멋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고, 매일 땀이 나도록 움직이는 운동은 스스로 관리할 줄 아는 여자라고 칭하게 해 주었다.
고양이들처럼 하루 루틴을 만들어 가는 것은 고급스러운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 루틴들이 자주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세우고 지키고 만들어지고 하는 루틴들은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