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에는 휴가를 내고 싶어요.
올 겨울을 알리는 첫눈도 엄청난 폭설로 많은 사고가 날 정도였는데, 새해가 밝아 구정이 지난 아마도 마지막일지 모를 눈도 폭설이다.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지 결심하고 호기롭게 출근했던 아침과는 반대로 오후가 오기 전부터 하늘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눈이 내리더니 이내 두껍게 온 세상을 덮어버린 하얀 눈이불들..
겉으로 보기에는 포근해 보이지만, 퇴근을 위해 밖으로 나온 순간 벌써 따뜻한 사무실이 그리워진다.
집도 1층이라 꽁꽁 얼어있다 보니 아이들이 추워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서둘렀지만, 앞이 보이지도 않고 재설이 채 되지도 않은 도로는 30분이면 달려갈 집을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멀어지게 했다. 퇴근길이 이리도 길었던가... 집은 따뜻하지 않을 수 있지만, (1층이라 보일러를 켜두고 다닐 수 없어요.) 코타츠에 이불에 털옷을 입은 우리 아이들이 얼마든지 몸을 녹일 곳은 많기에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운전에 집중했다. 쌓인 눈 때문에 미끌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마이카 덕분에 조금씩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이내 눈이 멈추고 도로는 녹기 시작해서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빠른 속도가 아니기에 나의 시야 안으로 눈으로 뒤덮인 산과 나무들이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비록 길은 눈에 뒤덮여 위험천만한 도로상황을 만들어냈지만, 주변으로 보이는 산과 나무들은 그야말로 홋카이도가 부럽지 않은 멋진 광경을 자아냈다. 우리 아이들도 지금쯤 넓은 베란다 창 밖으로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집에서 아이들과 눈구경을 해야지.
어릴 적부터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보다는 딱딱하고 평평한, 그리고 서늘한 공기를 좋아하는 듯 보였던 큰 아이 온이는 눈이 오면 유난히 베란다 밖을 보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몸이 허락하는 대로 차가운 베란다에 엉덩이를 짤고 앉아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뒷모습은 너무나 귀엽다. 저 작은 머리통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그러다가 몸이 좀 차가워진다 싶으면 스스로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내가 안고 들여오기도 하지만, 그러면 거실 안에서 밖을 쳐다본다. 내가 출근을 해도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는 이유다.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필름을 붙여두었다. 물론 저녁에는 블라인드를 내린다)
앙다문 입으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온이.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들어와서 내 옆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약간의 식사를 하고 다시 침대 위 자리로 옮긴다.
동생 흑미랑 장난칠 때는 계속 장난꾸러기일 것 같지만, 이렇게 조용히 앉아 사색을 즐길 때면 아주 멋진 성묘가 된 거 같아서 뿌듯하게 느껴진다.
역시 우리 집 멋쟁이 온이.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앙앙 앙앙 앙앙.."
?? 눈을 떠서 옆을 보니 온이가 누워있는 흑미와 서로 물고 빨고 물고... 투닥투닥하고 있었다.
얘들아.. 제발 낮에 놀고 저녁에는 잠 좀 자주지 않으련??
분리수면을 하다가 방에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 때문... 은 아니고, 자면서도 아이들이 그리운 나 때문에 방문을 다시 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함께 자다가도 이렇게 새벽에 깨어있으면 약간의 후회가 되기도...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그림자를 만들어 주면 두 아이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천정을 올려다본다.
아마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입모양과 머리통은 그야말로 너무너무 귀엽다.
새벽에 자주 깨더라도, 피곤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자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눈이 심하게 오는 금요일에는 바깥활동을 취소하고 불을 끈 거실 코타츠 아래에 발을 넣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낮잠을 잔다. 그야말로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고 있다 보면 발아래로 꼬물꼬물이 느껴지는데, 바로 우리 집 장난꾸러기 흑미다.
흑미는 1개월이 채 되지 않아 우리 집에 와서 그런지, 아니면 막내 티를 내는 것인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함께 한다.
옆에 누워있으면 얼굴을 살짝 쓰다듬어주게 되는데 그러면 또 세상 행복한 얼굴로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그 얼굴을 보면 딱 지금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모든 고된 일들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힐링을 하는 나는 휴가 때가 되면 바깥에 나가지 않으려고 모든 필요한 것을 미리 사두고 읽을 책을 준비해 둔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집에만 박혀 있는 것은 아니다. 휴가 중 한두 번, 혹은 하루 중 한두 번은 산책이든, 카페든, 혹은 지인과의 약속이든 나갈 빌미를 만들어내곤 한다.
그럼에도 꼭 집에 있는 시간을 확보해서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간단한 요리도 한다. 그렇게 평소 하고 싶던 일을 하고 나면 저녁시간에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또 슬픔에 압도되려 하면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집을 나선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카페에 홀로 앉아 책만 읽고 있더라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혼자 고립되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찔해진다.
어떤 것이 정말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는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방법인지 몰랐던 그때에는 그저 슬픔에 압도되도록 자신을 놔둠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빠져나가게 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었다. 마음이 얼마나 깊이 파이는지도 모르고... 그때의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아주 조금씩은 아물고 있음을 느끼면서 오늘도 스스로를 토닥여 본다.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것이다..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