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겪고 있었던 나에게
저에게는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주변 환경이 나빴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엄마가 너무 엄했고, 가정은 가난했으며,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멋지고 나를 알아주는 아빠가 없었고,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도, 다정한 선생님도 아무도 없었다고 말입니다.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나와 비슷한 친부모님이 어딘가에서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헛된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할 재능도, 없는 재능을 키워줄 재력도 없음에 온 세상이 나만 미워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사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사회가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뾰족함은 정당한 것이었지요.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잘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참 많은 눈물과 참 많은 방황을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방황도 여러 번 보이지 않는 방황도 여러 번.. 충분히 홀로 삭일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해 분출해 버리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아직까지 아파하는 것도 있고, 그저 남몰래 창피해하며 헛웃음을 지어버릴 수 있는 것들도 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들은 꼭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나는 왜 다른 이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건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머리가 부서져라고 생각했던 것이니까요.
주어진 환경 안과 밖에서 남들은 못했던 경험을 하기도 했고, 남들이 했던 경험들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키울 수 있었던 나의 재능도 있고, 죽여야 했던 호기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참으로 짧기도 하죠.
아이를 키우면서 적어도 이 아이는 저와 같은 슬픔과 방황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 아이의 몫이겠지요. 적어도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까지는 저의 손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서운 것은 아이가 언제쯤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 적정선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돌이켜 보면 아직도 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슬퍼하고 있고, 방황하고 있으니까요. 세상에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하고 있을 겁니다만....
따라서 자신의 몫의 슬픔과 방황은 충실히 견디어 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 슬픔과 방황이 오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호기심이 수많은 도전을 하게 할 것이며, 결국은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향해 가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일 테니까요.
아직 젊거나, 젊지 않거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아직은 울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 상태이긴 하지만요. 젊을수록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힘들고 방황한다고 해서 혼자만 그런 것이라고 내가 이상한 거라고 자책하지 말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