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아가랑 단둘이 빛의 벙커. 엄마력이 상승한다

돌 아기와 제주도 한달살기

by 목짧은두루미

오늘의 목적지는 빛의 벙커다.

사전 검색을 해보니 빛의 벙커는 관람객 대비 주차장이 좁아 제2 주차장에 가게 되면 5분가량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고 한다. 아기를 데리고 주차장을 헤매고, 또 셔틀버스를 타고 내리고 할 자신이 없어 오픈 시간을 공략하기로 했다.

10시 오픈인데 바로 옆의 커피 박물관에서 대기할 생각으로 9시 30분에 도착했다. 커피 박물관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커피 맛이었지만 넓고 쾌적해서 잠깐 쉬어가기엔 좋았다.

카페와 박물관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
인생 첫 문화생활을 위해 나름 차려입은 아가

잠깐 휴식 후에 입장! 이곳이 진짜 벙커였다니 신기하다. 간판과 출입문을 빼고 보면 영락없는 벙커의 모습이긴 하다.

모네,르누아르…샤갈
지중해로의 여행

난 사실 미술 전시회를 즐겨 찾진 않는다. 관람객들로 바글바글한 복도를 따라 나열된 액자들 속 그림이 나에게 영감이나 감동 따위를 주었던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봤던 모나리자도 바티칸에서 봤던 천지창조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빛을 이용한 색다른 미디어아트는 오히려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림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흘러나오는 음악의 진동까지 더해져 온몸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아기띠 안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아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왔는데도 아직 11시. 아침부터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카페도 가고 전시도 봤는데 아직 11시라니… 남편 없는 이틀이 2주같이 느껴진다.

아기랑 둘이 햄버거도 먹으러 가고, 청귤 티라미수도 먹으러 갔다. 언제 칭얼댈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게 사장님들은 꼭 우리 아가가 순둥이라 주장하신다.

자고 일어나 가장 기분 좋은 딱 그 30분, 또는 치즈와 귤로 달래진 아가의 모습이 퍽 순둥이 같긴 하다.

쌍콧물을 흘리며 우는 본모습은 모르겠지 하하.

남편 없이 보낸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다. 집이었으면 아기랑 둘이 외식 같은 것은 꿈도 안 꾸었을 텐데 여행지에 오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가보게 된다.

수없이 다녔던 여행을 돌이켜봤을 때 고생스러웠던 경험들이 기억에 많이 남듯, 제주생활에서 아기와 고군분투한 지난 이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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