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아기와 제주도 한달살기
제주에는 이북 음식점이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집 근처에 황해도식 냉면 파는 곳이 있어 가보았다. 나는 물냉면을, 엄마는 빈대떡이 들어간 메밀 온면을 시켜 먹었다. 직원은 음식을 내어주면서 음식에 재료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까지 설명해준다. 만 원짜리 음식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담은 정갈한 한 그릇이다.
바람도 적고 날씨도 맑은 오늘, 해안도로에
있는 닭머르 전망대에 가기 최적의 날씨다. 아기띠를 깜빡하고 놓고 왔지만 사진에 보이는 게 전부일 정도로 짧은 데크길이니 쉽게 갔다 올 줄 알았다. 큰 오산이었다. 아기는 안겨있으려 하지 않고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계속 내려달라고 뻗댔고, 엄마는 어째서인지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결국 내내 허리를 구부려 아가 양손을 잡고 걸음마를 도와주고, 계단마다 들어 올리고 내리며 전망대를 왕복했다. 날이 좋으면 뭐하나. 힘들어 죽겠는데.
힘들지만 바로 집에 가긴 아쉬워 공백 카페에 찾아갔다. 집에 들러서라도 아기띠를 가져갔어야 했는데, 여기서도 아가는 내 품을 탈출해 온 바닥을 자기 집 안방처럼 누비고 다녔다. 걷기라도 하면 좀 덜 민망할 텐데,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기가 더러운 바닥을 누비고 다니는데 안아주지도 않고 지켜만 보는 맘충(?)이라 생각하면 어쩌지… 아기 키워본 사람은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해주려나… 그렇게 아기만 잡으러 다니다가 허리가 나가버린 현실이다. 왜 엄마는 도와주지 않는 것인가?
저녁때 알고 보니 엄마는 나한테 삐쳐있었다. 내 딴엔 엄마가 힘들까 봐 아기 안는 걸 도맡아 했었는데, 엄마는 엄마가 아기 못 안도록 내가 아기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단다. 아기한테 뭐만 하려고 하면 내 눈치가 보이고,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내 눈치를 보고 허리 아파 약 먹어가며 아기를 돌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설움을 털어냈다.
최근에 ‘엄마 없인 못 살지만 엄마랑은 못살아’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지금 현실에 딱이다.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하는 엄마인데, 왜인지 같이 있으면 자꾸 오해가 쌓인다. 아마 내가 살갑게 굴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인간관계에 있어 늘 회피형인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거나 무언가 관계가 어려워지면 그냥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안 만나면 되고 마음 쓰지 않으면 됐다. 그런데 가족은, 더군가나 엄마는 그럴 수가 없으니 늘 갈등이 잘 해결되지 못한 채로 못난 딸이 되어버리고 만다.
카페 공백은 아메리카노가 7천 원대로 아주 비싸다. 자릿값이겠거니 하면서도 해도 해도 너무 비싸다 생각했는데, 카페 옆에 갤러리 건물이 따로 있었다. 큰 기대를 안 하고 간지라 더 재밌게 보았던 갤러리. 사진으론 그 느낌을 전혀 담을 수 없지만 괜히 찍어보려다 아기 안고 핸드폰 떨어뜨려서 액정이 박살나버렸다. 오늘 여행 코스도, 날씨도 정말 좋았는데 내 체력도, 마음도 영 따라주질 않아 아쉬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