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아기와 제주도 한달살기
오며 가며 보여서 계속 궁금했던 구들책방에 드디어 가봤다. 찾아보니 꽤나 유명한 헌책방인 것 같은데, 내부가 조용해서 사진도 못 찍었다는 이야기를 보고 아가랑은 못 가겠다 싶었다. 근데 마침 산책 중에 잠 들어준 아가! 드디어 들어가 본다.
이곳이 인기 있는 이유는 이 구들 때문일 것이다. 책방 한편에 마련되어있는 공간, 구입한 책을 읽고 갈 수 있다. 누가 아기를 봐줄 테니 한 시간만 나갔다 오라고 한다면 여기 와서 책 읽다 가고 싶다.
진열된 책들은 다소 아쉽다. 너무 흔한 책이거나 몇 년 된 여행책, 심지어 수학의 정석까지… 기부 형식으로 채워진 헌책들이니 대형 서점의 새 책들처럼 유혹적이게(?) 보일 순 없겠지. 그렇지만 조금 더 재밌게 큐레이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비슷한 책끼리 나름의 방식으로 진열되어있긴 하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으니 대충 봐선 보물 찾기에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난 보물 찾기에 성공했다. 난 12살 때 잠시 미국에 산 적이 있었는데, 요즘 어린애들처럼 영어를 잘 배워놓지 않았던 나는 abc정도만 아는 채로 학교에 보내졌다. 알아듣는 말이 거의 없이 온종일 구경만 하다 집에 왔는데, 그 당시에 선생님이 아침마다 읽어주신 책이 있었다. The Giver. 책 표지도 그때 그대로 똑같은 책을 발견했다! 매일 들었지만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었던 그 책, 이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이렇게 뜻밖의 추억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 헌책방의 매력이지!
오후엔 또 다른 책방인 사슴 책방에 다녀왔다. 사슴책방은 그림책 전문 책방인데, 언뜻 봐도 대충 모은 그림책이 아니다. 사장님이 엄선한 책들을 전 세계에서 들여와 예쁘게 진열해둔, 정성 가득한 책방이다. 아가가 볼만한 책 있으면 사주려고 간 건데, 아가가 볼만한 책보단 예술작품에 가까운 예쁜 책들이 대부분이다. 구매욕을 자극하는 그림책들이 몇 권 있었지만, 여기서나 이렇게 예쁘지 우리 집에 가면 결국 아가의 손을 피해 높은 책장에 꽂혀있다 잊혀질 것이 뻔하니 참아야 했다.
오후엔 예전에 같이 일하던 요가 선생님이 놀러 오셨다. 나처럼 한 달 살기를 하러 오셨는데, 당근마켓으로 산 주방 놀이를 드리려고 함덕으로 불렀다. 아가를 낳고 보니 아가 물건은 나눠 쓰며 쌓이는 정들이 많다. 선생님네 아가는 우리 아가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났다. 손 안 잡고도 잘 걷고, “엄마” 하고 또박또박 부르는 걸 보고 3개월 후의 우리 아가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특별히 아름다웠던 오늘의 석양. 사실 함덕의 석양은 매일 예뻐서 감탄했지만, 오늘은 남편과 함께 봐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중에는 서울에 가서 육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남편이 내심 부러웠는데, 정작 남편도 나와 아기 없이는 먹고 싶었던 걸 먹으러 가도 영 신도 안 나고 맛도 없었다고 한다. 함께 해야 즐거운 우리 가족, 뭐든 호들갑 떨면서 해야 더 신이 난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