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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Sep 09. 2015

동네 여행

멀리 비행기 타고 떠나야만 행복하다고 믿었던 지난날의 나는 없다. 


#1 동네 여행:
멀리 비행기 타고 떠나야만 행복하다고 믿었던 지난날의 나는 없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은 공간과 순간을 동시에 움켜쥐는 능력을 가졌다. 그 점에 매료된 나는 사진을 찍으며 어떤 공간을, 어떤 순간을 담아볼까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 그 고민을 통해 선택한 공간과 순간이 한 장의 사진에 담겼을 때, 그것은 내게 흘러간 과거가 아닌 영원한 현존의 실물이 된다.


사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남는’ 것이기에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한 것을 담아 남길지를 고심한다. 매번 똑같은 장소나 대상을 찍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이라면 필연적으로 ‘발견’을 꿈꾸게 된다. 더 멋진 장소와 대상, 더욱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여 담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행은 그런 욕망을 해결해주는 좋은 방법이었다. 일상 밖의 멋진 곳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짧은 기간 동안 밀도 높게 체험하는 시간이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눈치 봐 가며 얻어내는 일주일 남짓의 휴가는 사진을 찍기 위한 최고의 시기였다. 유럽으로, 호주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원 없이 떠나 보았다. 

사진들은 훈장처럼 남았다.





어느 때부턴가, 좋아하는 사진 찍기가 뜸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일 년에 한 번 떠나는 일주일짜리 해외여행만을 내 삶 속에서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순간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가 아니면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았다. 365일 중 358일은 흘러가고 사라지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관점을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일 년에 일주일만 특별한 삶을 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카메라를 자주 꺼내자고 결심했는데, 그럼 무엇을 어떻게 찍으면 좋을 지가 고민이었다. 


일주일 중 오롯이 내가 나에게 투자할 수 있는 날은 주말 이틀이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멀리 떠나기는 어렵다. 매번 큰 돈을 쓰는 사치를 부릴 수도 없다. 내가 동네 가까운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미처 발견할 사이도 없이 지나쳤던 출·퇴근길의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봄이면 밥풀 같은 흰 꽃을 조롱조롱 매다는 나무의 이름이 이팝나무라는 것도, 타는 듯 강렬한 자줏빛 꽃을 피우는 나무는 박태기나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름 없이 뒤에 깔리는 ‘배경’이었던 것들이, 관심 있게 살펴볼 ‘대상‘으로서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동네 한 구석에 가만히 숨어있는 달마을 공원이 얼마나 예쁜 곳인지도 새롭게 발견했다. 입구가 좁고 외진 계단길이어서 이 동네에 19년이나 살도록 전혀 몰랐던 곳이다. 바다 건너 여행을 갈망할 줄은 알면서도, 정작 길 몇 번만 건너면 이런 숨겨진 보물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모르며 살았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수많은 나무들과 꽃들은 참 무던하고 덤덤하다.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달라진 것은 나였다. 눈앞에 있는 것도 발견할 줄 몰랐던 과거의 나를 벗고,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읽어낼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세상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은 선유도로, 다음 주말은 파리공원으로, 나의 터전과 그 주변에 대한 작은 발견은 계속된다. 이제 나는 적어도 일 년의 1/3 정도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멀리 비행기 타고 떠나야만 행복하다고 믿었던 지난날의 나는 없다. 

나는 오늘도 두근거리는 동네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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