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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Sep 30. 2015

나의 한글가온길 답사기

한글, 힘없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긍휼의 언어


#10 나의 한글가온길 답사기: 
한글, 힘없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긍휼의 언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의 한글 자판 26개를 바라본다. 

단 26개의 자판으로 조합해 생성할 수 있는 글자 수는 놀랍게도 11172자. 한글은 창제된 지 570여 년이 지나서도 그 가치가 퇴색되기는커녕, 이렇게 디지털 시대마저도 평정하는 초월적 우수성을 뽐낸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켠 나는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한다. 이렇게 편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뇌어 본다.



이미지 출처: liverex.tistory.com



가까운 이웃 나라만 봐도 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가 세종대왕께 감사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은 고유의 문자가 없었으며, 한자를 빌려 간소화해 만든 문자인 가나를 쓰는 나라다. 만약 컴퓨터에 일본의 가타카나 중 ‘セ’를 입력하고 싶다면, 알파벳을 통해 그 소리를 ‘se’라고 묘사해 찾는 방식을 통해야 한다. 


중국의 한자는 3만 자가 넘기 때문에 원하는 글자 하나 찾기가 더욱 고되다. 먼저 입력하고 싶은 글자의 소리를 알파벳으로 입력하고 난 뒤, 평균 20개 정도 되는 같은 병음의 한자 중 맞는 글자를 선택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써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문장이 중국, 일본 문자는 35초가 걸린다고 한다. 한글은 디지털·모바일 시대에 더욱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11,172자가 새겨진 한글글자마당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놀라운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건만, 안타깝게도 그의 살아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그 뜻을 헤아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제 후 400년이 넘도록 암클, 아랫글 등으로 불리며 경시당한 한글의 아픈 역사와 한글에 대한 자긍심과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이 한글가온길 곳곳에 스며있었다. 이 길을 걷는 나 또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회루 앞에 자리한 수정전은 집현전 학사들이 연구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수정전 앞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들에게 인솔자께서 물으셨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단독으로 창제하셨을까요, 아니면 집현전 학사들과 공동으로 창제하셨을까요?” 부끄럽게도 우리 중 정답을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 원 지폐로 매일 보다시피 하는 익숙한 세종대왕인데, 우리는 생각보다 그를 잘 모르고 있었다.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곳은 상점들이 늘어선 좁다란 보행로 어디쯤이었다. 우두커니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낮은 표지석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으리으리하게 꾸며져 있어야 옳으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일은 아니겠지만, 바라보고 있자니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백성을 소중히 여겼던 세종대왕을 후세의 우리 국민들은 아끼고 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 왔다.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 (이미지 출처: train4world.tistory.com)



한글은 쉽게 탄생한 것이 아니며, 쉽게 이어져 온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 한글가온길을 걸으니 사무치게 와 닿았다. 한글이 도외시되어온  지난날 속에, 주시경 선생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한글은 없었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한글의 부흥을 꾀한 주시경 선생과 그 후학들의 업적이 지금의 한글을 만들었다.  그분들은 실용 학문을 한다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마저도 천대했던 한글을 되살리고, 일제 치하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갖은 고초를 감내하며 한글을 지키고자 애썼다.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 우리 한글을 바로 세우고자 애쓴 이런 훌륭한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 한글은 묻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한글의 고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어렵게 만들었을 한글가온길에는 크고 작은 오류가 있어 아쉬움을 남겼고,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은 건립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이전이 논의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창제 원리까지도 알고 있는 문자로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위대한 한글이지만, 그에 걸맞게 소중히 여겨지고 있지는 못한 현실이다.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이미지 출처: www.urimal.kr)



한글은 긴 시간 수구(守舊) 권력과 싸워왔다. 옛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성찰은 거부한 채 맹목적으로 숭상하거나, 기득권을 수호하는 데만 몰두했던 세력들은 한글을 두려워하고 핍박했다. 사대주의에 의해 억압받았던 한글은 일제에 맞서 싸웠던 독립 운동가들을 한 데 묶은 원천이자 사상이요 정신이었다.


나는 한글이 진보적이라는 게 매우 자랑스럽다. 우리의 역사 중 부끄러운 영역과 정확하게 대치를 이루며 한글이 자랑스러운 영역 한가운데 늘 존재했다는 것이 벅차오를 만큼 감격스럽다. 신분의 높낮음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말을 글로 옮기고 뜻을 펴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정신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진보였다. 외부 세력의 폭압에 항거하고 주체성을 부르짖는 데 쓰인 말과 글이 우리 한말글이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뭉클하다.






나를 비롯한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중에 한글도 있었음을 문득 느낀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배제됐다가 다시 지정되는 등, 한글의 중요성을 격하시키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게 만든 일도 과거에 있었다. 친일, 독재 등 과거사 청산도 요원한 우리 사회이기에 자주와 독립의 상징이기도 했던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에 제 발 저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어느 때고 한글이 자랑스럽지 않은 적 없었지만, 한글가온길을 통해 한글이 거쳐온 시간의 궤적을 훑으며 보다 더욱 자랑스러워해야 함을, 감사해야 함을 그리고 사랑해야 함을 깨달았다. 한글이 수호해야 할 전통이어서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개혁의 언어이고 잘못됨을 바로잡는 언어이며 힘없는 자가 힘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긍휼의 언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사랑이 우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졌다면 그를 아껴주고 보살펴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랑을 앞으로 한글과 함께 해보려고 한다. 한글에 대해 더 배우고 사랑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한글을 아끼고 지키려는 노력에 나 역시 힘을 보탤 것이다. 

같은 다짐이 한글가온길을 걸어본 사람들 모두의 가슴에 남았으리라.



곳곳에 숨은 한글을 찾아볼 수 있는 한글가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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