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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10. 2021

웨스트월드 <Westworld>

HBO에서 제작한 독특한 시각의 SF 드라마 <웨스트월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인기가 높은 드라마였다고 하는데, 이제까지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시작을 했는데, 첫 편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스토리에 작가를 찾아보았더니, 조나단 놀란이 총기획을 하고 있네요.



형인 크리스토퍼 놀란과 함께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항상 새로운 사고의 방향을 제시하던 작품들을 만들어 온 작가이자 연출가인데요,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웨스트월드>의 기본 구조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넓어졌습니다. 


<메멘토>는 기억이란 행위에 대해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는데요, 기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은 순수하게 사실만을 저장하고 있는지, 개인의 의식 속에서 기억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등 말이죠 


<인셉션>에서는 꿈이라는 무의식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층위와 이 무의식이 개인의 실존(본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무의식이 의식(자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인터스텔라>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전후 인과 관계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등 과학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사고의 재정립을 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웨스트월드>에서는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질문들에 대한 총체적인 해답을 찾아나가는 느낌이 강합니다.


과연 기억과 꿈 그리고 시간을 통해서 어떻게 인간의 자유의지, 본성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인식 등을 풀어나가게 될까요? 


  



웨스트월드는 진보된 미래의 안드로이드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서부극 형태의 테마파크입니다. "호스트(hosts)"라고 불리는 안드로이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인간에게 전혀 해를 끼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된 상태로 호스트로부터의 어떤 해악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유층 인간 방문객들은 이곳에 찾아와 자신의 숨겨진 본성을 찾고 해방감을 맛보고자 합니다.


HBO의 스타일대로 매우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화면을 보여주지만 기획자의 철학적 고민이 드라마의 전체 내러티브를 매우 독창적으로 끌고 나가면서 단순한 흥미위주의 드라마가 아니라 장면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좀 더 작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으시다면 몇몇 주요 대사를 주시하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요,


위에서 언급했던 놀런의 이전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 주제들을, 이 드라마 속에서는 "Remember-기억하라" "When are we-언제인가요?" "I'm in a dream-제 꿈속이에요"의 대사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을 통해 기억, 시간 그리고 꿈이라는 줄기를 따라 상황들을 연결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 3가지 주요 주제 중에서도 기억의 핵심을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작가의 견해가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감정적으로 계속 그 기억에 회귀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잘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왠지 이런 부분은 작가가 영국 출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함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Remember와 고통이란 감정의 연결고리가 나타났던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면 영국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이네아스>에 나오는 디오의 아리아 "When I am laid" 가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Remember me"라고 절규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극한의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는 이 아리아가 영국에서는 아주 인기가 높은 편인데, 이런 문화적인 원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고가 정립되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TV6F3lTU7o 






"When are we?"라는 질문 역시 상당히 독창적으로 다가오는데요, 어느 정도는 동양철학의 극간이 되고 있는 윤회사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계속 정해진 내러티브를 따라 역할을 반복하는 안드로이드들에겐 인간이 정해준 역할이 마치 그들에게 부여된 운명처럼 느껴지는데, 드라마는 이 테마파크를 창조한 로버트 포드 박사의 대사를 통해 과연 우리 인간은 저들 안드로이드와 달리 신이나 창조주에 의해 부여된 운명과 달리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의 앞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무척이나 무거운 질문에 사로잡히게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드라마의 세계관을 제한적인 테마파크로 한정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시간대의 모습과 행동들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며 드라마가 보여주는 표현의 폭을 무한대로 증폭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른 시간대의 모습을 서로 오버랩 시키면서 현재의 시간속에서 안드로이드가 이 오버랩되는 기억을 꿈이라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게끔 교묘한 장치를 만들어서,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들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가 만들어 낸 이전 작품들이 그렇듯이 아주 영리하게 기획되고 연출된 작품입니다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모두를 또는 그중 하나라도 재미있게 보신 영화팬이시라면 이번 <웨스트월드>를 통해 이전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고, 이전 작품들을 모르시더라도 새로운 관점의 잘 만들어진 SF 물을 만나보실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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