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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08. 2019

시대를  뛰어넘은 작은 거인

토넷 

코로나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가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 시장에서도 점차 데코레이션이라는 장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핵심 오브제에 해당하는 '가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의 식 주라는 단어가 참 신기한 건, 우리의 복잡한 인생사가 이렇게 간단한 3가지 분류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현대를 관통하는 소셜미디어의 열풍도 가만히 보면 이 3가지 분류법 아래에 있는 다양한 대상들을 놓고,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작용한 것 아닌가 싶거든요.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그램의 중요한 소재들을 보면, 


 1. 나를 예쁘게 꾸미는 일 (의衣 fashion)

 2. 내가 먹는 것 (식食 food)

 3. 나의 공간 (주住 living)


들이 주로 등장하니까요.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주류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천재들은 문학 철학, 그리고 예술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뛰어난 예술가나 철학가 또는 문인이 아니더라도 그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계면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한 작은 거인들이 있습니다. 


이번 편은 이런 작은 거인 중 한 명인 독일에서 태어난 목공 장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18세기의 끝무렵에 독일 보파르트란 곳에서 가구 공(구글의 설명을 그대로 빌리자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목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Michael Thonet은 새로운 기술 시대로 향하던 19세기 후반의 사회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개발을 통해 벤트 우드란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을 발명해 낸 뛰어난 장인이었습니다. 


 벤트 우드라는 건, 나무를 열과 수증기를 이용해 곡선으로 휘게 하는 기술인데요, 현대에 이르러 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원목 가공 기술 중 하나입니다. 원목을 가공하는데 들어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원목으로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곡선을 구현 해 낼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바로 위의 사진처럼 얇은 나무판을 겹쳐서 접착제로 붙인 다음 모양 틀에 대고 뜨거운 증기를 쬐어가며 모양을 변형시켜 나무를 이용해 곡면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요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작 합판을 부드러운 곡면으로 휘어서 만드는 다양한 가구가 바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아주 눈에 익은 모양들이지만, 사실  이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원목을 사용해 곡면을 표현하려면,


Ceccoti Collection


 

Finn Juhl - 45 Chair


위의 사진들처럼 원목을 깎아 낸 조각들을 부분 부분 붙여 이어서,  곡면을 가진 본체를 만들어 나가는 식으로 구현하거나, 




또는 아예 커다란 통원목을 구해서 얼음 조각을 하는 것처럼 원하는 디자인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 불 필요한 부분을 전부 깎아내서 곡면으로 보이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미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극적인 곡면들은 위의 사진처럼 어려운 작업을 여러 번 거쳐야 했고, 좀 더 덜 극적인 곡면들은 통원목을 그대로 깎아 내는 (역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라는 소재가 가진 단점들 (터짐, 휨) 때문에 제작이 어려워 고가의 가구 외에는 이런 방법을 접목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위 이미지에 나오는 의자의 다리 부분이 바로 통원목을 깎아서 조각처럼 만들어낸 다리 들입니다.


 나무를 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낸 토넷은 과연 이 기술을 이용해 어떤 디자인의 가구들을 만들어 내는지 한번 볼까요?




 토넷의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이 No.21 Rocking Chair는 1800년대 후반에 디자인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어 이케아에서 비슷한 디자인 봤는데 하실 겁니다. 21세기에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이케아의 의자에 이렇듯 약 150년 전 독일의 가구 장인 토넷이 개발한 기술과 디자인을 적용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209 의자는 가장 기본적인 식탁 의자의 형태로 위의 rocking chair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다양한 브랜드들의 의자 디자인에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벤트 우드의 중요성은 사실 위에 언급한 곡면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한 장점 외에, 산업혁명 이후 문화 예술 사상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기 시작한 모더니즘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구 디자인을 위한 신기술이었다는 점입니다. 틀에 대고 동일한 모양을 반복적으로 쉽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대량생산에 능한 방법이었으며, 얇은 나무판을 여러 겹 이어 붙인 덕분에 원목이 지니고 있던 휨이라는 단점을 없앨 수 있어서, 제품의 첫 모양을 유지하기도 쉬웠습니다. 


 모더니즘 시대의 중요한 건축가이면서 가구 디자이너인 르 코르뷔지에는 이런 토넷의 제품들을 엄청 사랑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로 토넷 의자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는데요 '개념에 있어 이보다 더 우아하고 뛰어난 것은 한 번도 없었으며, 제작과 사용의 적합성에 있어서도 이제껏 이 같이 완벽한 것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간결한 선의 미학, 기존의 방식에 비해 저렴한 생산 단가로 (틀에 넣고 찍어 낸다고 할까요, 이전에 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공정이었습니다) 좀 더 많은 대중이 사용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대정신의 산물, 그리고 나무의 단점을 제거한  혁신적인 기술까지 토넷이 개발한 이 기술과 그가 이 기술을 통해 디자인한 제품들은 20세기 초반 모더니스트들의 눈에는 가장 완벽한 가구 제작 기술 및 디자인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하시는 미드 센츄리 모던 스타일의 대표적인 임즈 라운지체어 역시 토넷이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대부분의 유럽 가구 장인들은 아시아에서 넘어온 목가공 기법에 함몰되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예술작품 같이 보이길 원하는 가구들을 제작하고 있을 때, 토넷은 이렇게 새로운 시대정신과  구 시대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21세기까지 살아남는 위대한 기술을 창조해 낸 진정한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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