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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03. 2019

잊혀진 열정을 되살린다

Luzerne festival과 Claudio Abbado  

 모든 음악 애호가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 시장은 지난 세기를 거치고 나면서 지속적으로 하강세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 물론 충성도 높은 마니아 계층은 그대로 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것은, 트렌드 세터와 얼리 어답터 같은 마니아를 통해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고, 이 새로운 상품을 일반 소비자들이 소비해(트렌드를 따라) 주어야 하는데,  현재는 일반 애호가 계층에서의 확산이 약간 정체기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중국 등 새로운 신흥 시장의 등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통의 강호인 유럽 시장에서의 침체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유럽의 클래식 음악 시장에 새로운 상품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새로 탄생한 건 아닙니다. 원래도 여름 음악제로 유명했던 스위스 루체른 음악제와,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지난 세대 최고의 스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결합이었으니까요. 예전 같으면 큰 뉴스거리가 되었겠지만, 암투병 등으로 인해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고 생각되는 아바도가 과연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던 게 그 당시 시장 상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클래식 연주회라는 상품은 럭셔리 시장에 속합니다. 근데 약간은 이상한 럭셔리 시장입니다. 서로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앞 다퉈 더 비싸고, 새롭고, 수량이 한정적인 특수 상품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일반적인 럭셔리 시장과 달리,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는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충분한 숫자의 부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숙련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많이 필요한 시장입니다. 


 그런데, 시장의 눈높이에 비추어 볼 때,  이전 시대의 거장과, 또 그가 창설한 젊은 음악도 중심의 유스 오케스트라 정도가 시장에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내기는 쉬워 보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음악제의 콘셉트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지난 시절 가지고 있었던 나의 열정, 그리고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을 되살려 내게 되는데요,


본래 클래식 음악 공연장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일종의 만남의 장소, 소셜라이징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허영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명성과 경험을 사고팔던 곳이었죠.


 그렇던 시장에 날벼락이 내리게 됩니다.  새로이 신흥 부자 시장에 끼어들기 시작하는 러시아 및 동구권 부자들은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불편해지고, 오히려 정권과의 관계로 돈을 번다는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안목을 높이 띄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신흥 부자들은 미술 시장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기존의 유럽 부자들의 새로운 세대들 (자녀들)은 그들의 돈을 유명 셀럽과 함께 있기 위한 이벤트에 쓰는 걸 더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고 보니, 음악 시장에는 새로운 고객 유입이 줄어들고 있었고, 빵빵한 지갑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망 고객들은 옆 집(미술시장)에 가서 샴페인을 터트립니다.  


또한 IT로 큰돈을 만지게 된 미국의 젊은 부자들은 이런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기보다는 청바지에 편한 니트 차림으로 오히려 대중과 섞이는 편을 선호하고 있었고요.


 이런 어려운 시기에 베를린 필의 새로운 상임 지휘자가 된 사이먼 래틀은 그래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년간 단위로 아주 적은 금액만 (실제 필하모니아 홀에서 실황을 볼 때 내야 하는 티켓 가격과 비교해서) 내면 우리 베를린 필의 실황 연주를 온라인으로 보게 해 주겠다. '와, 이럴 수가" 하지만 우리 입맛에 딱딱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료 사이트의 서비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런 올드스쿨들의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고객을 유입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시간이 많이 흘러 현재 이 베를린 필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장 전체가 저물어 가고 있을 때,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잠시 무대에서 사라진 노병이 돌아옵니다. 투병생활로 몸도 좋지 않은 이 노장은 그러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던, 날씨 좋은 스위스에 원래부터 있었던 여름 페스티벌을 새로운 재기의 무대로 만듭니다. 젊은 음악도를 위해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본인의 주도로 만들었던  유스오케스트라 등을 출연시키며 이 여름 음악제에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채워 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이 노장을 좋아했던 돈 많은 중 장년 층이 이 도시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게 노장의 이전 전성기 시절 보여주었던 격정적인 지휘였을까요? 그건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이 거장은 최전성기가 지났고, 더군다나 투병 생활을 거치는 바람에 예전 같은 격정적인 지휘를 기대하기도 힘든 몸 상태였으니까요?


 

음악홀 전경



 서두에서도 밝힌 것처럼,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 중에도 아쉬운 과거를 지닌 이들이 많습니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질주하는 동안 자신의 꿈과 자신의 반려자들을 한쪽에 접어 두고 있었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바로 이 성공을 위해 포기한 열정들을 이 음악제가 되살려 냅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말이죠. 이 음악 축제는 바로 이걸 타깃으로 해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전성기의 아바도가 열정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를 하고 있었을 때에는, 이제는 루체른으로 돌아와서 아바도의 연주를 바라보고 있는 대부분의 성공한 사업가들도 그들의 전성기에 아바도 못지않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전성기에 나는 내 사업의 전성기였기에,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현업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성공을 만끽하고 싶은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포기한 그 열정, 그 열정을 만들어준 그 짧은 추억,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던 많은 유럽의 중장년들이, 아바도를 보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놓쳐버린 그 추억의 시간들을 찾아서 루째른으로 꾸역꾸역 몰려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돈 많은 부자들의 추억 찾기에는 가족도 동참하게 될 테고, 이러면서 루째른 음악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여타 유명 음악제에 밀려 있던 자신의 위상을 되찾게 됩니다.


잊혀지고 있던 페르골레지라는 바로크 작곡가에서 현재를 대표하는 현대음악가 작곡가인 루이지 노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연주해 온, 이 노 거장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이렇듯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잊고 있던 열정까지 되살려 내는 희망의 불씨가 되어 주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gSNgzA37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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