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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09. 2019

음악에 숨은 Satire 찾기

번스타인

음악 속에도 satire가 숨어 있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작곡가들은 과연 어떤 멜로디를 어떤 리듬을 가지고 음악 속에 satire를 숨겨 놓았을까요?


고전음악에서 satire가 쓰인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음악의 희롱>이나,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이 가장 유명하죠. 좋은 예이기도 하지만, 사실 조금 다른 결의 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희롱>


https://www.youtube.com/watch?v=nx-N9I1eZyM


경쾌한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이상한 불협화음이 끼어드는데, 19분 37초 부근의 두드러지게 잘못 들어간 3 음표가 가장 대표적인 joke이지만 군데군데 모차르트의 재치가 드러나 있습니다. 4분 6초 부분의 horn, 11분 36초 부분부터 종지부로 향하는 것 같다가 다시 시작되는 화음 등이 또 다른 소소한 예인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음악의 희롱>에서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을 비꼬고 있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화성법 조차 잘 적용하지 못하는 작곡가들이 당시에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이든은 <고별 교향곡>에서 마지막 악장의 연주가 채 끝나기 전 단원들이 한 명씩 빠져나가는 유명한 에피소드를 연출합니다. 자신을 고용한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악단의 단원들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힘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항의를 음악을 통해 했다고나 할까요? 성공했냐고요? 일단 역사는 하이든 편을 들어주네요. 이 연주 장면을 본 후작은 단원들의 상황을 이해해서 휴가를 주었다는 훈훈한 내용으로 일화가 끝이 납니다. 여기서도 음악가인 하이든의 놀라운 재치를 느끼 실 수 있습니다. 


 제가 두 번 다 재치를 느낄 수 있다고 쓴 이유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재치 있는 이야기, 그림, 영화 등이 satire를 품고 있다는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재치가 풍자인지 또는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제가 쓰는 satrie란 단어가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생각하고 계신 satire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단어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겠죠.


 제가 생각하는 satire는 약간은 간접적이고, 긍정적이며 유머러스합니다. 그에 반해 비교하려고 하는 재치 즉sarcasm(비꼬기)는 좀 더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며, 조금은 부정적입니다. 사실 이 정의는 저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니고, 여러 영영 사전에서 두 단어를 찾아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두 작품은 satire보다는 sarcasm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제 견해입니다.


 아! 그러면 뭐가 satire라고 생각하냐고요?  

 아마도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싶은데, satire 문학의 최고봉인 <걸리버 여행기>를 한 번 다시 살펴볼까요?



 걸리버는 첫 번째 항해에서 난파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릴리퍼트라고 불리는 소인국에 도착해서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이 소인국은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요, 그들이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삶은 계란을 깨는 방법에서의 이견 때문입니다.  과연 뾰족한 끝을 깨는 사람들이 이길까요? 아니면 좀 더 둥그런 쪽을 깨는 사람들이 우세할까요? 우리는 이 소설이 풍자하는 당시의 정치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재미있는 동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오랜 시간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 속에 살아남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만화로 만들어져서 널리 소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때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키즈 카페 체인의 이름에도 릴리퍼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듯 풍자는 그 내용을 몰라도 그만 알아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비꼬기 sarcasm은 좀 다릅니다. 서로가 그 비꼬는 대상과 비유되는 대상의 특징과 차이 등을 이해하고 있어야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는 간혹 sarcasm에서, 비유의 소재와 대상을 이해하나 못하나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폭력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 물론 재치 있는 sarcasm은 아주 재미있고, 저 또한 이런 sarcasm이 적절히 사용된 '빅뱅이론'이라는 미드를 아주 좋아합니다. 


 설명이 너무 길어졌는데,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 보면, 제가 생각하는 음악에 있어서의  satire는 바로 말러의 <교향곡 1번>입니다. satire를 좋아했던 번스타인이 학생들을 위한 음악 설명 프로그램에서 이 교향곡의 주제와 보헤미안의 민요 Fere jacques를 비교 설명을 하는 것을 본 순간, 제가 좋아했던 메인 주제가, 아이들 동요에서 멜로디를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부다페스트 초연 당시에는 이 익숙한 민요가 단조로 바뀌져서, 느리고 서사적인 장례 행진곡으로 변한 모습에 많이 들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연이 끝난 후 길거리에서 말러를 본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이상한 사람을 보듯 말러를 보고 수군거렸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5A5tFyXQio

 

<교향곡 1번>  3악장입니다. 일명 장송행진곡이라 불리는 부분인데요,

00:14 부분에 Bass 솔로로 시작되다가 현들이 합쳐지고 한 순간 갑자기 오보에가 한 점을 찍듯이 시작을 하면 점차 다른 관악기가 따라오며, 그러다가 전체 오케스트라 총주로 연결되는 멋진 부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I0abuwq31g 

프랑스 어린이 동요 버전인  fere jacques입니다. Brother John이 등장하는 영어 버전으로도 유명하지만 보헤미안의 민요 멜로디에 바탕을 둔 이 프랑스 동요가 시작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간단하고 단순한 어린이 동요의 멜로디를 차용하고 더더구나 장조를 단조로 바꿔 멜로디의 감성을 전혀 다르게 바꿔버린 말러의 능력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주 유명한 스토리라서 많은 음악학자들이 satire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지만 굳이 번스타인의 설명을 예로 든 건, 번스타인이 본인 스스로 satire를 아주 좋아한 음악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번스타인이 작곡한 오페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캔디드> (한국에서는 캔디드로 많이들 소개하지만, 볼테르의 명작 깡디드를 베이스로 해서 만든 오페라입니다)에서 이 음악가의 satire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깡디드>는  원작부터가 satire로 가득 찬 볼테르의 소설이죠. 루이 14세 시절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중요한 사상인 "라이프니츠의 낙관론과 기독교적인 예정론"을 풍자한 아주 재기 발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소설을 읽고서, 돈키호테의 좀 더 재치 있는 버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같은 프랑스 작가인 라블레의 한 세기 이전 작품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로부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은 프랑스적인 감성이 느껴집니다.


 번스타인은 본인이 작곡한 여러 오페라 중에 이 작품에 특히 애정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초 발표한 50년대 이후 두 번의 개작을 거쳐서 1989년 작곡자가 직접 지휘를 해서 레코딩까지 합니다.


이 레코딩 이후 깡디드의 몇몇 아리아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을 보면, 작품성 때문에 빛을 못 보고 있었던 것보다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란 히트작 때문에 생겨난 번스타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plNKL1mT4E 

 조수미 씨가 부르는 주인공 꽁네꽁드의 아리아입니다. 아주 경쾌한 리듬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위한 노래죠.


https://www.youtube.com/watch?v=6ZPF5mPIpXU

1989년 레코딩은 런던에서 연주회와 녹음이 같이 기획되었습니다. 동일한 가수와 오케스트라의 89년 런던 공연 실황인데요, 서곡 부분을 지휘하는 번스타인의 동작이 발랄하고 리듬감 있는 음악과 함께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토록 흥겨운 서곡과 아리아 한곡을 들어 보셨는데요, 이 <깡디드>에 바로 번스타인의 풍자가 숨어 있습니다.


2막의 5번째 곡 "Quiet"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Twl6mgA40


신세한탄을 하는 두 여자에게 "Quiet"라고 외치는 governor의 대사를 제목으로 삼은 3 중창인데요, 위에서 들어 보신 곡과 느낌이 아주 다르죠.


이 부분은 경쾌하고 리드미컬 한 오페라의 다른 부분과 달리 뭔가 현대 음악스러운 면이 많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으로 작곡된 것입니다. 현대음악의 위대한 발명가로 알려져 있는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자신의 오페라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지루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번스타인의 유머에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이렇듯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오페라를 작곡한 번스타인의 대표작은 하지만 역시 위에서 언급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입니다. 클래식 작곡가의 뮤지컬로 널리 알려져 있고 초기의 대성공 이후 61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뮤지컬 이상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를 통해서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마리아를 연기한 나탈리 우드에 완전히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깡디드>를 녹음하기 몇 년 전 (1984년) 번스타인은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호세 카레라스'와 '키리테 카나와'를 주인공 토니와 마리아역에 캐스팅해서 직접 녹음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녹음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기존의 교향악단들을 배제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에서 연주를 하던 다양한 뮤지션들을 모아서 이 녹음만을 위한 일종의 임시 관현악단을 꾸려서 녹음을 실시하게 됩니다. 자신의 곡에 들어 있는 다양한 라틴리듬과 재즈 리듬을 기존의 관현악단으로 연주해서는 생생한 느낌이 덜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바로 이런 부분이 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다른 각도로 즐길 수 있는 풍자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번스타인의 선배 세대 작곡가인 비제, 라벨 등은 독일의 거대한 낭만주의 음악 전통에 반기를 든 프랑스 음악을 작곡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져 내려오는 음악적 전통이 약했던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음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하바네라'를 보면,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카르멘>에서 주인공 카르멘이 부르는 아리아를 그 당시 유럽을 관통한 중남미 음악에서 리듬을 빌려 옵니다. "하바네라"는 하바나의 춤곡이란 뜻이 있는, 쿠바에서 시작해 유럽까지 퍼진 댄스곡이지요.  라벨 역시 라틴댄스의 일종인 볼레로를 통째로 가져다 곡의 제목으로 붙여서, 유명한 바로 그 <볼레로>를 탄생시켰습니다. 약간 억지스럽게 비유하자면, '한류 열품에 힘입어 어떤 중국 클래식 작곡가가 "뽕짝"이라는 명곡을 탄생시켰다' 같은 게 아닐까요 


 고상한 전통을 가졌다는 클래식 음악에 이런 동시대를 휩쓸던 새로운 유행 음악의 리듬을 이용해 작곡을 한 선배들처럼, 번스타인은 클래식 음악이란 틀에서 묶여있지 않고,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합니다. 거기에 우리 위대한 선배들의 작품은 클래식이라 하는데, 내가 좀 하면 어떤데 라는 satire를 숨겨 놓은 것 같습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그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소재에 걸맞게 당연히 다양한 라틴음악을 차용해 멋진 리듬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 좀 더 쌓인 나이에 다시 만나게 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보며, 작곡가가 진정으로 마음에 두고 있던 마리아는 가냘픈 비련형 '나탈리 우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강한 여인상을 노래로 연기할 수 있는 '키리테 카나와'인 것도 눈치챌 수 있었고요. 


 이렇듯 번스타인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세상에 많은 이야기를 던지고 간 진정한 음악계의 거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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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간의 사족 -


 어린 시절 동화로 출간된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무척 궁금했던 게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삶은 계란의 껍질을 벗길 때 계란의 옆 면을 돌려가며 바닥에 툭툭 하고 붙딪혀서 조금씩 금을 내어 껍질을 까곤 했습니다. 저 말고도 주위에 저처럼 계란을 깨던 친구들이 꽤 많았던 터라, 전 왜 이 사람들이 옆으로 깨냐 끝으로 깨냐 (사실 제 주변에서는 계란을 왜 옆으로 깨냐 와 끝으로 깨냐로 나뉘어서 작은 다툼들이 있었지 이쪽 끝이냐, 저쪽 끝이냐 는 중요하지 않았거든요)를 가지고 논쟁하지 않는지 무척 당황스러웠었습니다.


 이 비밀은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영국 여행을 떠나면서 쉽게 풀려 버렸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삶은 계란을 계란 컵이란 곳에 넣어서 식탁에 올리고, 그 끝 부분을 스푼으로 톡톡 두드려 조금 벗긴 후에 소금과 후추를 취향껏 뿌려서 스푼으로 떠먹는다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요. 이렇게 하면, 옆으로 굴려서 깨는 우리네 방식은 애초에 설자리가 없었던 거네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에그 컵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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